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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물리학이 선물하는 새로운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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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물리학은 우주의 물질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 설명해준다. 물리학 이전의 인류는 주술과 미신에 기댈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우주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데 이르렀다.
물리학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지라고, 물리학이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 던지는 비유적 화두들은 우리에게 색다른 깨달음을 준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우리는 f=ma라는 식을 배운다. 잉글랜드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대표적인 업적을 나타내는 식이다. 왼쪽 항은 힘이고 오른쪽 항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다. 물체에 힘을 주면 가속도가 발생한다는 뜻이고, 반대로 어떤 물체가 가속도를 가진다면 그 물체에 이미 힘이 작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속도는 속도가 변화하는 시간적 비율이다. 그래서 속도를 미분하면 가속도가 된다. 또 속도는 위치가 변화하는 시간적 비율이므로 위치를 미분하면 속도가 된다. 반대로 서술하면, 가속도를 적분하면 속도가 되고 속도를 적분하면 위치가 된다.
다시 f=ma로 가보자. 어떤 물체의 위치를 변화시키려면 힘을 줘야 한다. 하지만 힘을 주면 위치가 바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속도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가속도가 속도에 영향을 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적분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이 적분은 시간 축에 대한 연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한 속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시 위치에 영향을 준다.
결과적으로는 물체에 준 힘이 위치를 변화시키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는 시간이 소효된다. 마치 정치와 비슷하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존재한다. 정치적 결정, 입법, 행정 등은 마치 물체를 옮기기 위해 부과하는 힘과 같다. 하지만 그 결과가 사회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꽤 필요하다. 마치 위치의 변화가 두 번의 적분을 통해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때때로 정치적 결정과 행위가 바로 결과로 확인되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물리학은 우리에게 여유를 가지고 조금 기다리라고 말하는 듯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속도가 누적되면 속도를 거쳐 위치의 변화를 가져온다. 이 적분의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과거의 시작 시점에서 현재 시점에 이르는 모든 가속도가 빠짐없이 적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역사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의 발자취는 모두 역사가 된다. 이 역사가 하나하나 모여 미래가 되며, 과거의 역사가 모두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역사 속에는 우리의 아름답고 찬란한 모습도 있고 처참하고 부끄러운 과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우리의 모습이 된다. 지우고 싶은 역사라고 무시하거나 덮어둘 수 없다. 그 부끄러움의 역사가 현재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 전범의 역사를 처절하게 반성했던 독일, 그리고 그와 사뭇 다른 길을 걸었던 일본이 떠오른다. 또한, 식민지 역사에서 조국에 등을 돌린 이들을 철저하게 단죄했던 프랑스, 그리고 그 과정에 실패했던 우리나라도 떠오른다.
뉴턴이 f=ma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의 기초를 완성하고 100년이 지난 후, 새로운 역학이 탄생하였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조제프 라그랑주는 역학에 대한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꾼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냈다. 이른바 라그랑주 역학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론은 사실 뉴턴의 역학과 수학적으로 등가를 이룬다. 따라서 라그랑주가 완전히 새로운 역학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가진 역학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뉴턴 역학에서 핵심이 되는 수학은 미적분이다. 라그랑주 역학의 핵심적인 수학은 변분법 variational calculus이다. 수학적으로 미적분보다 더 구조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봇대 사이의 늘어진 전깃줄의 곡선 모양을 수학적으로 찾을 때, 또는 공기에서 물로 빛이 통과할 때 일어나는 굴절 현상을 설명할 때 변분법을 사용할 수 있다.
라그랑주 역학에서 변분법은 ‘최소 작용의 법칙’을 통해 적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작용’은 action으로 번역되는데, 매우 특정한 수식으로 정의되는 양이다. 라그랑주가 발견한 것은 action이 최소가 되는 방식으로 우주의 역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뉴턴 역학 f=ma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특정 의도 없이 힘을 주면 물체도 단순히 f=ma에 따라 가속도를 가질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제어 공학은 원하는 위치에 물체가 도달할 수 있게 의도된 힘을 물체에 부과하는 방법을 다룬다.
라그랑주 역학의 최소 작용의 법칙은 뉴턴 역학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물체에 주어진 힘이 의도를 내포하든 아니든, 그 어떤 경우라도 물체의 역학적 기저에는 항상 action이 최소가 되게 하는 거대한 우주의 의도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뉴턴과 라그랑주 역학을 연장해 보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단순하고 일시적인 인과관계만을 보이는 어떤 현상이나 행위 속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거대한 작용의 원리가 계속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신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유 의지 대한 논의와도 연결되어 보인다. 이 우주가 신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고 작동한다면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많은 자유가 허락되었을까? 뉴턴과 라그랑주 역학을 대응시켜 본다면, 우주를 만든 신의 의도가 작동한다는 것(라그랑주 역학에 대응)과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뉴턴 역학에 대응)은 어쩌면 등가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의 능력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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