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 2026년, 세계는 다시 ‘돈의 전쟁’으로 들어간다
페이지 정보
본문
2026년 새해가 밝자마자 세계는 다시 한 번 통화의 문제, 그중에서도 ‘기축통화’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관세, 전쟁, 외교 충돌, 동맹 갈등이지만, 그 이면을 꿰뚫는 하나의 축은 분명하다. 누가 세계의 돈을 쥐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빼앗으려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도 예외 없이 거칠고 직선적인 방식(베네수엘라 사태를 통해 연초부터 트럼프 스타일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으로 국제 무대에 서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동맹을 압박하고,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며, 연준을 향해 불편한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반대편에서 중국은 훨씬 조용하지만 집요하게 움직인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이름으로 항만과 철도, 도로와 발전소를 잇고, 그 위에 중국 자본과 위안화 결제 구조를 올려놓는다. 달러를 정면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신 “달러 없이도 가능하다”는 경험을 하나씩 쌓아간다. 중국은 속도를 내기보다 시간을 선택하고 있다.
이 두 움직임은 우연히 겹친 것이 아니다. 2026년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은 단연 기축통화를 지키려는 나라와, 그 질서에 균열을 내려는 나라의 대립이다.
기축통화란 무엇인가
기축통화는 단순히 “많이 쓰이는 돈”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가장 믿는 돈, 그리고 위기 때 가장 먼저 몰리는 돈이다. 국제 무역 계약의 기준이 되고, 원유와 원자재의 가격이 매겨지며,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금고에 쌓인다.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사실은 미국에 막대한 특권을 준다. 미국은 재정적자가 커져도 당장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리지 않는다. 세계가 달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 결제망을 통해 미국은 총 대신 금융 제재라는 무기를 쓴다. 러시아, 이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힘은 군사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축통화는 경제 개념이 아니라 패권의 언어다. 세계가 어느 돈을 쓰느냐는 문제는, 어느 나라의 규칙을 따르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기축통화의 역사
기축통화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드러난다. 돈이 먼저가 아니라, 해상력·금융·군사·무역 네트워크가 먼저였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금융 강국이었다. 암스테르담에는 근대적 의미의 은행과 증권시장이 있었고, 네덜란드 길더화는 국제 상인의 신뢰를 받았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작았고, 전쟁과 경쟁을 버텨낼 체력이 부족했다.
19세기에는 영국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산업혁명으로 제조업을 장악했고, 해군력으로 바닷길을 지배했으며, 런던 금융시장은 세계의 자금이 모이는 심장이었다. 파운드화는 금본위제라는 신뢰 위에서 세계를 누볐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은 영국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그 자리를 미국이 차지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과 달리 미국은 산업과 금융을 온전히 유지했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달러는 금과 직접 연결된 유일한 통화가 됐고, 이후 금태환이 중단된 뒤에도 달러는 그 자체로 신뢰의 기준이 됐다.
중요한 것은, 기축통화는 도덕이나 명분이 아니라 힘의 결과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힘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달러를 지키기 위한 거친 선택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와 경제 정책은 종종 무모해 보인다. 동맹국에 대한 관세, 연준을 향한 공개 압박, 중국과의 정면 충돌은 세계를 피로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트럼프의 무역전쟁은 단순한 보호무역이 아니었다. 중국이 위안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무역 질서를 만들 가능성을 초기에 차단하려는 시도였다. 연준에 대한 압박 역시 정치적 계산뿐 아니라, 세계 금융이 계속 달러에 의존하도록 만들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달러화를 기본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도 그 일환에 하나인 것이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원유와 가스를 수출하는 국가는 곧 달러 결제의 범위를 넓히는 국가다. 페트로달러 체제를 지키는 것은 위안화 도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방어선이다.
마두로 체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미국은 여전히 달러 질서를 위협하는 국가에는 어떤 대가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2026년 새해 벽두, 이재명 대통령은 1월 4일부터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귀국하자마자 1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찾았다. 세계 질서를 둘러싸고 각자의 계산이 첨예하게 맞서는 두 나라를 불과 열흘도 되지 않는 기간 안에 연이어 만난 것이다.
문제는 방문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어떤 위치를 선택하고 있는가이다. 미·중 갈등, 달러와 위안화의 충돌, 동맹과 비동맹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 속에서 한국은 중재자인지, 균형자인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경로 중 하나인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대통령의 일정은 공개돼 있지만, 그 일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두드린 계산기의 숫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국제사회는 ‘우리 편’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영원한 동맹도, 영원한 적도 없다. 남는 것은 각 나라의 이해관계와 생존 전략뿐이다. 이런 세계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기대는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중심이다.
밖에서는 치열하게 계산하되, 안에서는 분열되지 않는 나라.
2026년을 맞은 대한민국에 지금 가장 필요한 선택은 외교의 기술보다 먼저, 국가의 방향과 내부 결속을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