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메이플의 온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25-03-07 09:20

본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큰아이가 가족을 데리고 한국 처가에 다녀오는 동안, 기르던 애완견을 우리 집에 맡기고 갔다.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 나는 선뜻 허락하지 못했다.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개와 가까이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애는 메이플을 맡아달라고 간절하게 설득했다.


"엄마, 털도 안 빠지고 물건도 안 물어뜯어. 실수도 안 해. 하루 서너 번 산책만 시켜주면 돼."


  나는 여전히 망설였지만, 큰애는 단호했다. 그렇게 메이플이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밤, 큰애는 강아지 먹이와 장난감, 잠자리용 이불까지 한가득 풀어놓았다. 장난감 하나하나를 설명해주고, 간식은 몇 시간 간격으로 줘야 하는지, 어느 시간이면 산책을 시켜야 하는지 꼼꼼히 일러두었다. 마치 어린아이를 처음 맡기는 부모처럼 몇 번이고 메이플을 안아주고 쓰다듬다 떠났다.


  메이플은 푸들이 반쯤 섞인, 적당한 크기의 개였다. 몽글몽글한 털은 흰색과 복숭아색이 어우러져 있었고, 무엇보다 눈빛이 너무나 맑고 선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개를 무서워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처음 메이플과 마주한 날, 녀석은 반가움에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어머, 어떡해?" 


  놀란 내 모습을 본 작은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손을 내밀어 봐. 그러면 메이플이 엄마랑 친해지고 싶어 할 거야."


  나는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메이플은 나를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한바탕 컹컹 짖고는 내 손끝을 살짝 핥았다. 순간 움찔했지만, 녀석은 이내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망설이다가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날 이후, 메이플과 나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메이플이었다. 두 발을 들고 반갑게 뛰어오르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런 메이플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서워했다. 오래전, 친구의 레이크 하우스에 초대받았던 날이 떠오른다. 친구가 개를 키운다는 것은 알았지만, 송아지만 한 개를 그것도 두 마리나 키운다는 것은 몰랐다. 거대한 개 두 마리는 혀를 늘어뜨린 채 헐떡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침이 줄줄 흐르는 입, 커다란 발톱, 거친 숨소리. 나는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친구는 개들을 묶어주었지만, 나는 끝내 개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더 오래된 기억 속에는 시골집에서 기르던 진돗개가 있다. 그 시절에는 개를 마당에 묶어놓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개는 순한 편이었지만, 뒷집 남 씨네 개는 달랐다. 쇠사슬을 당기며 날카롭게 짖던 모습.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마주치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고, 개는 달려들 듯 사납게 짖어댔다. 울면서 길 한가운데 멈춰 서 있던 그때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개가 있는 곳에서는 긴장했다. 개의 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친구 집에 방문할 때면 개가 달려들까 봐 의자 위로 다리를 몽땅 올려놓고 앉아 있곤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애정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 인생에서 개와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메이플을 품에 안고 있다.


  메이플이 우리 집에 온 지 어느덧 두 주가 되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잘 먹고 잘 자며 가족들과 정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작은애의 침대 한편에서 잠들던 녀석이 이제 남편의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잠자리에 들면 조심스럽게 메이플을 올려주었고, 메이플은 그 자리에 기대어 밤새 곤히 잠들었다. 아침이면 눈을 반쯤 감은 채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남편은 메이플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야 우리가 일을 하니까 못 키우지만, 나중에 은퇴하면 메이플 같은 아이 하나 키우자."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남편이 먼저 그런 말을 할 줄이야. 그러나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별다른 말이 없던 우리 부부가, 요즘은 메이플을 사이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침대에서. 메이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언제부턴가 추억과 웃음으로 번졌다.


  "메이플, 어디 갔어?"

  "이리 와, 메이플. 잘 잤어?"


  그동안 우리 집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개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고, 그 작은 생명에게 온 마음을 내어 주게 될 줄이야.


  이제 며칠 후면 메이플은 제 집으로 돌아간다. 남편은 벌써부터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메이플을 품에 안아주며 몇 번이고 쓰다듬는다. 나 역시 이별이 아쉽다. 이 작은 생명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메이플 덕분에 나는 두려움을 극복했다. 메이플 덕분에 가족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밤이 깊어간다. 내 품에서 곤히 잠든 메이플의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고마워, 메이플."


  녀석이 떠난 후에도, 그 온기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인공지능(AI)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의 소재가 아니다. 준비 여부와 관계없이 AI는 이미 우리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리빙 2025-05-01 
    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 [email protected] MacArthur Blvd suite 103, Lewisville, TX 750…
    리빙 2025-04-18 
    가게에 물건이 들어와서 며칠간 바빴다. 오랜만에 들여온 거라 양도 많았고 바뀐 계절에 맞춰 디스플레이도 손봐야 해서 할 일이 많았다. 페덱스 아저씨가 커다란 종이 박스 여러 개를 작은 가게에 쌓아놓고 갔다. 목장갑을 끼면서 박스를 쓱 훑어보았다. 십 년 전부터 거래해…
    문학 2025-04-18 
    2025년 3월, 미국 연방정부는 IRS(Internal Revenue Service)와 ICE(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간의 정보 공유 체계를 공식화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이 협약은 연방 차원의 법 집행 및 세원…
    회계 2025-04-18 
    예전의 텍사스의 날씨와는 사뭇 다르게 변덕스럽고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를 느끼며 달리다 보니 벌써 5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4월, 5월이면 텍사스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하기 가장 적당한 기온을 유지하는데 곳곳에서는 각종 페스티벌이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
    여행 2025-04-18 
    공사중인 건물보험근래에 들어 한인타운내에 자체 건물을 짓는 한인 교민들도 많아지고 있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개인이 많아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한인사회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도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지어져 있는 건물을 구입 하면서 그 건물을 …
    리빙 2025-04-18 
    교통사고 후 받는 치료 중 재활치료, 통증의학 치료, 심리 치료에 대해 이번에는 자세히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지난 번에 언급한 대로 기본적인 치료 이후에 권하고 진행되는 치료들은 환자의 상태와 부상의 심각도에 따라 달라지게 되므로 모든 사고 환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
    리빙 2025-04-18 
    늘 새로움을 더하는 하루 하루가 우리 앞에 계단을 놓고 있습니다. 녹음이 우거지고 비로소 시작되는 텍사스의 무더위는 상쾌한 숲 속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방금 찬물로 씻은 듯 시원한 미소로 여름을 맞이하기를 구하고 있다. 때로는 헉헉거리며 땀에 얼룩진 삶의 모습을 아무도 …
    여행 2025-04-11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관세전쟁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에게 대항하는 …
    회계 2025-04-11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중얼거린다.“일어나기 싫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늙어가는 이 나이에 학교 가기 싫어 꾀를 부리는 아이처럼 아직도 월요일 아침마다 이러고 있으니, 나도 참 이상한 아줌마다. 평생을 올빼미처럼 밤에 더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으니 당연…
    문학 2025-04-11 
    크리스틴 손,의료인 양성 직업학교, DMS 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 469-605-6035)약을 다루는 또 하나의 전문가, 약국 테크니션 (Pharmacy Technician) -12주 단기과정으로 시작하…
    리빙 2025-04-11 
    공인회계사서윤교미국 연방 소득세 1차 신고 마감일인 4월 15일이다. 이미 많은 분들이 개인 소득세 보고를 마치셨겠지만 아직 세금 보고를 완료하지 못한 납세자들은 남은 기간 동안 효율적으로 신고를 준비해야 하며, 만약 기한 내 제출이 어렵다면 연장 신청을 고려해야 한다…
    회계 2025-04-04 
    2025년이 엊그제 시작이 되는가 싶더니 벌써 4월의 시작점에 와있습니다. 아직은 봄이 채 이른지 쌀쌀한 아침 기운에 살짝은 어깨를 움츠리지만 금세 하늘이 거치며 따스한 텍사스의 햇살이 온 대지에 충만한 생명의 빛을 선사합니다. 이번 봄은 얼마나 우리에게 많은 일들을…
    여행 2025-04-04 
    운전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조심을 한다고 해도 예기치 않게 사고는 일어나고 사람들은 다친다. 그것뿐인가 아무 문제없이 주차장에 주차해 두었는데 나무 가지가 떨어져서 자동차 앞 유리가 부서지기도 한다. 뜻밖의 사고가 일어날 때를 위하여 자동차 보험은 …
    리빙 2025-04-04 
    조진석 DC, DACBR, RMSKProfessor, Parker UniversityDirector, Radiology Residency Program at Parker UniversityVisiting Fellowship at the Sideny Kimmel Medi…
    리빙 2025-04-0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