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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고대진] 충성! 명령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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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298회 작성일 25-02-2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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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고대진
칼럼니스트 고대진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필자가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유신이 선포되고 유신정권이 들어앉아 있었고 군에서도 높으신 장군들이 어떻게 하면 이 유신정권에 잘 보일까 연구하다 '군 새마을 운동'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장교들에게 집중적인 정신 순화 교육을 받게 하여 충성심을 높이게 한다는 뜻에서 새마을 교육을 본받아 만들어낸 프로그램이었다. 대상은 각 부대에서 위관 장교를 중심으로 매회 백 명가량을 한곳에 모아 정훈교육을 일주일 동안 계속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박정희 어록을 낭송하는 소리로 시작하여 하루 여덟 시간 교육받아야 했고 밤에 자기 전 또 한 번 박정희 어록을 들으면서 끝났다. 교육은 주로 부대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는 것과 상관의 명령을 잘 들으면서 군의 정풍운동을 초급 장교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반 부대에서는 회계나 공사비 혹은 납품 등을 통해 비리가 행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필자가 근무하던 사관학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부대에서는 이런 부정이 일어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가 있는 군대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급 장교들을 교육하는 것은 어쩌면 바람직한 일이었다.

 

교육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교육받은 장교들에게 공군의 발전을 위한 솔직한 제안을 해보라는 자유 토론 시간이 주어졌다. 아마도 이 교육을 받고 부대에 돌아가서 '새마을 교육'을 받은 지도자들 같이 정직하게 군 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다른 교육생들의 말을 들어보았다. 어느 부대의 대위가 나와서 하는 말. 저는 이 교육을 받고 부대 내 재정적 비리나 뇌물 수수 등등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비리를 상관이 시키는데 이를 거절 할 수가 없습니다. 거절하고 하지 않으려니 상관의 명령을 불복종하게 되어 명령 불복중죄로 처벌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실 비리는 높은 상급 장교들이 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하는 일인데 우리가 이 교육을 받았다고 상급 장교들이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교육받던 우리의 생각이었다. 내 차례가 와서 뭔가를 말해야 했기에 내 생각을 말했다. 솔직히 충언하라고 하시니, 하겠습니다. 저희 같은 초급 장교 대부분이 부정이나 비리를 저지를 기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뭔가 있다면 위에서 시키는 일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이런 교육은 장군이나 영관급 고급 장교들이 먼저 받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면세품이나 (당시 군인들에게 세탁기나 냉장고 등 고급 물품을 면세로 구매할 수 있는 특혜가 제공되었다. 단 수량이 제한되어 원하는 사람이 다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특혜는 장군님들이 먼저 받아서 우리에겐 돌아올 면세품이 없는데 이런 교육은 초급 장교들을 먼저 받게 하십니다. 이 순서를 바꾸면 군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어진 다른 장교들의 조언도 비슷했다. 동석했던 장군님이 얼굴을 붉히며 나와서 대답했다. 군인에게는 상관의 명령 복종이 가장 먼저다. 비리라 생각하더라도 명령에 따르는 것이 군인의 임무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교육에서 자유 토론이나 군 발전을 위한 제언이란 시간이 없어지고 유신의 당위성 등을 설명하는 교육으로 바뀌고 말았다. 


예나 지금이나 상관을 향해 경례하면서 외치는 소리는 '충성'이다. 마치 상관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것처럼. 사실 이 충성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인데 상관이란 사람에 대한 충성으로 잘 못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니 상명하복을 떠받드는 군인에게 명령의 정당성을 따진다는 사실은 그 장군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을 것 같다. 권력을 쥔 장군 출신들이 소위 '유신'으로 세상을 망쳐 놓은 때였기 때문이다. 새마을 교육을 백 년을 해봐도 썩은 윗사람들이 있는 한 '헌 마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상명하복을 따르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군사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박정훈 대령의 '부당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 얼마나 용기 있고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된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쫓아 상관의 비윤리적 명령도 문제 삼지 않는 과잉 충성들이 판치는 세상에 박정훈 대령의 용기 있는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윤석열 내란 비상계엄 당시 뛰어난 전투력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한 계엄군, 그리고 윤석열 체포 저지에 항명하거나 바리케이드로 세워둔 차량에 열쇠를 꽂아둔 경호처 직원들의 모습에서 박정훈 대령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지난 2023년 9월 전역식에서, 44년간 군 생활을 마무리하며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왕이나 여왕, 폭군이나 독재자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으며, 독재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 우리는 헌법에 맹세하고, 미국이라는 개념에 맹세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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