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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쇠비름을 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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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468회 작성일 24-10-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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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며칠째 비가 올 듯 하늘이 잔뜩 흐렸더니, 오늘도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느새 수확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수영장에 빠져 떠다니는 후박나무 잎을 건져내다가, 의사가 해주었던 비타민 D 부족이라는 말이 떠올라 오랜만에 텃밭에 앉아봅니다. 텃밭에서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쇠비름입니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쇠비름을 뽑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엄마는 호미가 닳도록 이 잡초를 뽑아냈지만, 돌아서면 다시 자라나던 녀석들이었죠. 엄마의 손등에 돋아난 힘줄처럼, 쇠비름은 집 앞뜰을 점령하곤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끈질기게 살아남는 쇠비름을 보며, 세월이 흐른다 해도 이 작은 풀은 그 강한 생명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텃밭에서 만난 쇠비름은 조금 달랐습니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서도 통통하게 자라던 그 녀석들이 이제는 시들해졌습니다. 노랗게 피어나던 꽃들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작은 풀씨들이 가득했습니다. 뿌리째 뽑아 햇빛 아래 보름이 넘도록 두어도 좀처럼 시들지 않는 쇠비름. 하지만 지금은 그 풀씨들을 익히느라 골몰한 나머지, 몸이 마르는 것도 모르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 혼자 길을 떠났던 남편이 18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 헝클어진 머리와 하얀 턱수염. 작은 아이가 그를 거렁뱅이 같다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혼자 떠난 여행이 쉬웠을 리 없을 텐데도, 그의 얼굴은 한없이 밝았습니다. 남편에게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였다는 것’이라 답할 겁니다. 출사길에는 혼자가 좋다는 그, 원하는 순간에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겠죠. 처음에는 그가 혼자 떠난다고 했을 때 걱정스러웠습니다. 작은 아이 역시 아빠가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떠나는 게 불안해 제발 말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속 걱정을 숨기고 떠나보냈습니다.

  남편은 비록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환했습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돌아왔습니다. 그의 모습은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고독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돌아온 그의 눈빛만큼은 36년 전 우리가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반짝였습니다. 그가 여행 중 겪은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데 신이 나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차가 모래 속에 빠졌을 때 그를 도와준 일가족 이야기는 앞으로 몇 번을 더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요한 광야를 혼자 걸었던 시간이 그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해졌습니다. 무엇을 찾고 싶어서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났을까요. 그 먼 길을 홀로 걸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여행 속에서 남편은 어떤 씨앗을 품고 돌아왔을까요.

혼자 떠난 여행, 그 속에서 무엇이 그를 저렇게 빛나게 만들었을까요. 멋진 가을 하늘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차창 너머로 보이던 붉고 노란 풍경 때문이었을까요. 여행 중 만났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의 마음을 채웠던 걸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있습니다. 어느 꽃도 같은 모양과 같은 시간에 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꽃은 봄에 피고, 어떤 꽃은 겨울에 피죠. 백 년에 한 번 피는 대나무 꽃처럼 드물고 귀한 꽃도 있고, 사계절 내내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때와 방식으로 피어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쇠비름이 훤칠하게 자라면 더 이상 쇠비름이 아닐 것입니다. 질긴 힘줄로 바닥에 뿌리내리고 살아남았기에 쇠비름입니다. 


삶은 자연과 닮았습니다. 꽃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모습대로 피어나야 합니다. 어떤 꽃은 홀로 피고, 어떤 꽃은 무리 지어 피지만, 그 모든 꽃들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쇠비름처럼 질기고 끈질기게 버티며, 자신만의 씨앗을 품고 피어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생명력입니다. 남편의 출사는 그가 그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자신의 씨앗을 찾고 피워낸 여정이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찾고, 자신만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그 씨앗을 어떻게 피워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나는 남편의 출사를 통해 내 삶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지. 내 삶의 씨앗은 어디에 있으며, 나는 그것을 피워내고 있는지. 내 색깔을 잃지 않고 피어나고 있는지. 혹시 눈치 보느라 피어날 용기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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