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백경혜] 떠나갈 나에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KTN
문학 댓글 0건 조회 194회 작성일 24-06-08 02:34

본문

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열 시간을 운전하여 내슈빌에 왔다.

  댈러스에서 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670마일 달려온 이곳에서 아들을 만났다. 기숙사를 비워야 하는 방학 때마다 오는데, 어쩌다 두 아들이 같은 대학에 다니게 되어서 칠 년째 오가는 중이다. 가져올 짐이 많다는 핑계를 대지만, 사실 오고 싶어서 온다. 울창한 숲 가운데로 고속도로가 나 있어서 긴 시간 운전도 할 만하다. 카페인 짱짱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 속에 잠겨서 한적한 도로 위를 날아갈 듯 달리는 것에는 묘미가 있다. 드라이브하는 동안 나는 낯선 땅에서 애면글면 살아내느라 쪼그라든 가슴 깊은 곳에서 팔팔한 마음 한 움큼을 끄집어올린다. 그것을 생기나 패기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기품 있고 활기찬 캠퍼스도 볼거리다. 시내에 있는 대학인데도 여름밤엔 수백 종의 나무들 사이로 반딧불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캠퍼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쇼트 팬츠에 스니커즈를 신은 학생들과 섞여 앉아 있으면 안 나오던 글이 슬슬 풀리기도 한다. 젊음은 일종의 에너지인가 보다.

 

  아들 방은 동굴 같았다. 책상 주변만 동그랗게 치웠고 주변으로 빨아야 할 옷가지며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그나마 다 먹은 음식 봉지와 투고 박스들은 치웠다는데, 여기서 건강하게 잘 있어 준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이불을 걷어 세탁하고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제출 기한이 임박해야 집중이 되어 느지막이 숙제를 시작하는데, 코딩이 안 풀릴 땐 며칠이고 하얗게 밤을 새웠다고 했다. 하여간 다 커서도 아슬아슬하게 군다. 책상 위엔 몬스터 인형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비디오 게임 속 캐릭터다. “얘네들이 널 지켜줬구나?” 하니, 얘도…” 하며 모니터 아래 누워있는 또 다른 몬스터를 일으켜 앉혔다.

  아들은 185센티가 넘는 키에 큰 체구다. 거구의 아들이 상상 속 몬스터에게 위안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걸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몸이 자라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잡지 못한 걸까. 온화한 성품의 작은아들은 햇볕에 널었다 들여온 솜이불 같아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아들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이가 천천히 떠나도 나는 좋을 것 같다.

 

  아들도 참 이쁘다. 꼬물거리는 입에 조그만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먹이고 잠 못 들어 칭얼거릴 땐 품에 안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 재운 것은 아들이나 딸이나 마찬가지다. 잘 먹고 순조롭게 자라는지, 친구는 잘 사귀는지, 공부 안 하고 빈둥대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정성껏 키우는 것도 매한가지다. 그런데 다 자란 딸과 친한 엄마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반면, 아들과 친한 엄마는 어쩐지 눈총을 받는 것 같다. 어떤 이는서운하게 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마음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다.”라고 충고한다. 그 아들에게 마마보이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딸을 키웠어도 무척 친했을 터인데, 다소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억울해도 별수 없다. 반은 맞는 얘기 같으니까. 큰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아들은 가족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달라진 태도에 적응이 안 돼 한동안 어리둥절하고 섭섭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임을 결국엔 배우게 되었다. 여자아이였다면 비교적 유연하게 자기를 설명했을까. 아들이 딸보다 더 단호하고 확고하게 독립해 가는 건 사회적 요구와 남성 호르몬이 한몫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둥지가 좁아지면 다 자란 새는 둥지를 떠나야 하리라. 깃털을 단장하고 데이트를 나서는 새가 둥지까지 돌 볼 여유는 없을 것이다. 자기 인생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이왕이면 훨훨 날아가 멋지게 자기를 어필하기 바란다. 부모를 떠나 독립된 사회의 일원이 된 자식은 정서적,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강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것은 딸과 아들에게 예외가 없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아진 탓인지 요즘은 부모들도 많이 변했다. 자식만 바라보며 사는 엄마를 주변에선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홀어머니 사연 같은 건 이제 사라져가는 옛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아들 엄마에 대한 편견도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부모도 자식이 제때 떠나줘야 편하다. 모처럼 자유를 얻은 부모도 날개를 펼치고 멀리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팔딱거리는 열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파이널 시험을 마치고 온 아들이 의자를 한껏 젖히고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 슬슬 기숙사 짐을 싸야 하지만, 좀 놀게 놔둔다. 작은아들도 여문 청년이 되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같은 둥지에서 살아온 정을 오롯이 나누고 싶다. 그리고 때가 되면 둘째도 기쁘게 떠나보낼 테다. 가끔은 숲속에 한데 모여 흥겹게 노닐기도 하겠지. 하지만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궤도를 쫓으며 행복을 지지해 줄 것이다.

  내일도 에너지 드링크를 몇 모금 들이켜고, 두고 온 내 둥지를 향해 신나게 날아보련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꼭 한번 정도는 혹은 여러번 경험하게되는 일들 중 한가지가 바로 교통사고이다.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인 2023년도에는 그 전년도 대비 3,367 건이 증가해서 무려 총 558,953건의교통사고가 텍사스 주에서 발생하였다.이처럼 언제 어디서든 본인의…
    리빙 2024-06-15 
    I.R.S.는 Internal Revenue Service의 약자로 연방 정부의 행정 부서중 하나인 재무성 (US Treasury)의 산하 기관이다. 우리나라 말로 국세청이 바로 IRS 인것이다. Internal Revenue는 외국에서 수입해 들어 오는 수입품에 부과…
    회계 2024-06-15 
    더 자세한 문의는 972-243-0108로 연락하시면 정확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일반적으로 증권회사에 대한 감독은 연방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보험회사는 일반적으로 주정부가 주도적인 감독기관이다. 보험회사들은 크게 두 개의 분야로 나누어 본다면 먼저 상…
    리빙 2024-06-15 
    스쳐 지나가는 풍경 하나 하나에서 감성을 발견하는 발버둥 치는 나의 감성적 스펙트럼은 유타의12번 도로를 여행하기에는 제격이었습니다. 유타주의 빈약한 인구 분포도 있지만, 지형상 쉽게 도로를 만들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여행 2024-06-15 
    Partner, Immigration Mobility Solutions PLLC(678) 972-3481David@IMSglobalmobility.com영주권을 취득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 중에 고용주 스폰서를 통한 취업영주권이 있다. 취업영주권(employment-b…
    리빙 2024-06-15 
    안녕하세요! 드디어 공식적인 여름이 시작 됐습니다.오늘 소개 드릴 음식은 ‘망고스틴’이라는 과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흔히 접하는 딸기,포도,사과 등과 비교하면 생소한 이름의 과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제가 주로 먹는 것만 먹는 극도로 편식 위주였으나 식…
    리빙 2024-06-15 
    달라스에서 아테네로 가는 직항은 없다. 신화 속 인물들을 거치지 않고 신들에게 갈 수 없듯이,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시카고를 거쳐 9시간을 날아가야 아주 오래된 도시 아테네가 나온다. 공항은 딱 우리나라 김포공항 수준이었데, 도시의 분위기 역시 1980년대 서울과 흡사…
    문학 2024-06-15 
    시총 2조 7천억달러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Nvidia 일군 젠슨 황 누구?Code Red. 의료시설에서 화재 등 긴급 상황 발생을 지칭하는 용어다.2022년말, 구글은 오픈AI의 챗GPT 열풍에 화들짝 놀라 비상사태를 뜻하는 이 ‘코드레드’를 발령했다. 챗GPT …
    부동산 2024-06-13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날씨와 경제어느덧 2024년도 6월에 접어 들면서 이제…
    회계 2024-06-08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아침식사로 사랑받는 베이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베이글은 원래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주로 먹던 빵이었습니다. 반죽의 재료는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 물뿐입니다. 버터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아 담백한 …
    리빙 2024-06-08 
    ​ 열 시간을 운전하여 내슈빌에 왔다.<span lang="EN" style="font-family: &quot;Arial Unicode MS&quot;;mso-fareast-font-family:&quot;…
    문학 2024-06-08 
    자이언 캐년(Zion Canyon)에서 나와 유타를 남북으로 잇는 89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14번 도로를 만나 왼쪽을 턴하여 우리가 정한 캐빈을 향해 가고 있는데 유타의 모든 사슴이 이곳에 모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수백 마리의 사슴의…
    여행 2024-06-08 
    척추는 여러 개의 척추뼈가 길게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척추뼈들 사이에는 디스크라는 연골조직이 있습니다. 이 연골조직들은 척추뼈들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척추뼈들 사이의 공간을 유지시켜 척추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에 척추뼈…
    리빙 2024-06-08 
    조나단 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표적으로 투자 은행, 경영 컨설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프로덕트 매니지먼트는 오늘날 대학 졸업자, 취업준비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 분야로 꼽힌…
    리빙 2024-06-01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인 샌디애고(San Diego)에서 시작하여 캐나다 국경까지 이르는 1,433.52마일 길이의 15번 하이웨이는 라스베가스(Las Vegas)를 거쳐 유타주로 들어서면 쾌적한 기운이 감도는 인구 3만의 조그만 도시인 시더 시티(Cedar …
    여행 2024-06-0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