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데스크칼럼

[기자의 눈] 프리스코가 보낸 신호 — 한인 커뮤니티,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6-02-14 02:33

본문

보도국장 최현준
보도국장 최현준

프리스코 시의회에서 최근 벌어진 공개 발언 논쟁은 단순한 지역 행정 이슈나 선거 국면의 소음으로 넘기기에는 함의가 적지 않다. 한 회의 참석자가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지면 지역 정체성이 위협받는다”, “H-1B 워크비자 소지자들이 우리 자원과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식의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심지어 일부 발언은 “이민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훔쳐간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혼란을 가져온다”는 식으로 이어졌고, 몇몇 참석자들은 인도 출신 주민들을 겨냥한 일반화된 비난을 반복했다. 이러한 발언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시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혐오 표현을 규탄하며 선을 긋는 성명을 발표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이 장면은 다양성이 빠르게 확대되는 도시에서 이민자 집단을 향한 불안과 반감이 얼마나 쉽게 공적 공간에서 정치적 언어로 표출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특정 집단이 인도계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프레임이 언제든 다른 이민자 커뮤니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스텍사스 지역에서 한인 인구와 사업체, 전문직 종사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프리스코에서 나타난 긴장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달라스, 캐롤튼, 플래이노, 프리스코 일대는 이미 다민족 고성장 도시로 분류되며, 인구 변화 속도 또한 빠르다. 이런 환경에서는 경제적 압박과 생활비 상승, 주택 가격, 교육 경쟁이 맞물리면서 “누가 더 많이 가져가고 있는가”라는 감정적 질문이 등장하기 쉽다. 그 질문이 특정 이민자 집단을 향하는 순간, 갈등은 구조화된다.


지역사회 갈등은 대개 실제 피해 수치보다 체감 불안에서 먼저 시작된다. 일자리와 교육, 주거, 공공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이 커질수록, 주민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를 원인으로 지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비영어권 커뮤니티가 가장 먼저 그 대상이 된다. “세금을 누가 쓰는가”, “기회를 누가 가져가는가”, “우리 동네가 바뀌고 있다”는 감정적 서사가 형성되면, 사실과 데이터는 뒤로 밀리고 구호와 낙인이 앞에 선다. 프리스코 시의회 발언 역시 정책적 분석이 아니라 정체성 위협이라는 언어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한인 커뮤니티가 이 사례를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는, 성장한 이민자 집단일수록 지역사회에서 가시성이 높아지고 동시에 오해와 왜곡의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한인 사회는 이미 소상공인, 의료, IT, 교육, 부동산, 외식업 등 지역 경제의 여러 축을 담당하며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상권 활성화, 세수 확대, 전문 서비스 제공 등 긍정적 효과가 분명하지만, 이런 기여가 체계적인 자료와 스토리로 정리되어 전달되지 않으면 외부에서는 단편적 이미지로만 인식되기 쉽다. 눈에 띄는 일부 성공 사례만 부각되거나 특정 업종에 대한 고정된 인상만 남게 되면, 전체 커뮤니티의 다양성과 실제 역할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인식의 공백이 생길 때 그 자리를 추측과 감정이 채운다는 점이다. 성공은 존중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왜 저 집단은 빠르게 성장하는가”, “혜택을 더 받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사실 확인 없이 퍼지면, 부러움은 경계로, 경계는 불만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경제 여건이 불안하거나 지역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이런 심리적 전환은 더 쉽게 일어난다. 소수의 사례가 전체의 특징처럼 일반화되고, 온라인 공간과 지역 정치 담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도 반복된다.


따라서 대응은 사후 반응이 아니라 사전 준비 중심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료 기반 커뮤니케이션이다. 감정적 주장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검증 가능한 수치와 구조적 설명이다. 한인 이민자의 창업률, 고용 창출 효과, 세금 기여도, 지역 상권 활성화 지표, 전문직 진출 비율 같은 데이터는 미리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H-1B 비자, 취업 이민, 가족 이민이 지역 경제에 어떤 순환 효과를 만드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자료도 필요하다. 갈등 상황에서 즉석 반박이 아니라, 준비된 설명이 나와야 설득력이 생긴다.


지역 공적 네트워크에의 참여도 중요하다. 한인 커뮤니티가 자체 행사와 내부 조직에만 머무르면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 이사회, 시 자문위원회, 상공회의소, 시민 포럼, 다문화 위원회 같은 공식·비공식 구조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자리가 있어야 목소리도 존재한다. 갈등은 대개 “없는 자리”에서 커진다. 참여가 곧 예방이다.


문화적 접촉면을 넓히는 노력도 필요하다. 갈등의 상당 부분은 정보 부족이 아니라 관계 부족에서 생긴다. 얼굴을 알고,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는 집단에 대해서는 극단적 일반화가 어렵다. 지역 축제, 학교 프로그램, 비즈니스 협업, 봉사 활동, 공개 세미나 같은 접점을 통해 한인 커뮤니티의 존재를 생활 속 이웃으로 인식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 보여주는 방식 역시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협력과 동반 참여 형태여야 효과가 크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위기 대응 체계다. 공적 자리에서 혐오 발언이나 차별적 발언이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 원칙과 절차가 미리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공식 입장문 작성 기준, 미디어 대응 창구, 법률 자문 네트워크, 피해자 지원 연결 구조가 준비되어 있다면 불필요한 감정 충돌을 줄이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즉흥적 분노는 공감을 얻기 어렵지만, 정돈된 대응은 신뢰를 만든다.


프리스코 시의회 논쟁은 불편한 신호이지만 동시에 준비할 시간을 준 사례이기도 하다. 다양성은 자동으로 공존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해, 설명, 참여,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공존이 완성된다. 한인 커뮤니티는 이미 지역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존재의 확대가 아니라 관계의 확장이다. 갈등의 가능성을 외면하기보다, 전략으로 관리하는 성숙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데스크칼럼 목록
    프리스코 시의회에서 최근 벌어진 공개 발언 논쟁은 단순한 지역 행정 이슈나 선거 국면의 소음으로 넘기기에는 함의가 적지 않다. 한 회의 참석자가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지면 지역 정체성이 위협받는다”, “H-1B 워크비자 소지자들이 우리 자원과 기회를 빼앗아 …
    2026-02-14 
    2012년,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모델 S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전기차는 여전히 주변부의 기술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선택지였을 뿐,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여전히 내연기관이 차지하고 있었다. 전기차는 비쌌고 충전 인프라는 부족했으며, 성능과 안정…
    2026-02-07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말을 남겼다.“어리석은 사람들은 확신에 차 있고, 지적인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요즘처럼 이 말이 절실하게 와 닿는 시대가 또 있을까.우리는 지금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이민 …
    2026-01-31 
    1977년 3월, 필자가 다니던 국민학교가 서초동으로 이전했다. 지금의 강남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서초동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강남 고속버스터미널도 그 즈음에 현재의 자리로 이전을 했고, 말죽거리라 불리던 양재 사거리는 서울의 끝…
    2026-01-24 
    2026년 새해가 밝자마자 세계는 다시 한 번 통화의 문제, 그중에서도 ‘기축통화’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관세, 전쟁, 외교 충돌, 동맹 갈등이지만, 그 이면을 꿰뚫는 하나의 축은 분명하다. 누가 세계의 돈을 쥐고 있는가…
    2026-01-17 
    불안의 시대, 한인 사회가 다시 묻는 질문해가 바뀐다고 삶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제의 걱정은 오늘도 그대로이고, 어카운트 잔고와 건강, 자녀 문제는 달력 한 장 넘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현실이 갑자기 관대해지는 일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
    2026-01-10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첫 태양이 텍사스의 넓은 대지 위로 솟아올랐다.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는 매년 새롭지만, 올해 달라스 한인 동포 사회가 마주하는 공기는 여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이는 단순히 달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갈 리더십의 중심…
    2026-01-03 
    DK 파운데이션이 DK 미디어그룹과 협력해 매년 펼쳐오고 있는 이웃돕기 캠페인 ‘더 나눔’이 올해로 네 번째를 맞았다. 어느새 ‘더 나눔’은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텍사스 한인사회의 작은 약속이자 큰 희망이 된 것 같다.지난달, 필자는 ‘텍사스 한인사회를 향…
    2025-12-27 
    “SNS에 갇히고 길들여져 간 2025년 “2025년이 끝자락으로 향하고 있다. 한 해를 돌아보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사건의 목록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해를 관통한 언어를 살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언어는 사회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
    2025-12-20 
    2025년의 끝자락, 달라스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던 어느 저녁에 올해의 한국 검색어 목록을 펼쳐 보니, 마음이 잠시 멈춰 선다. 화면 속 몇 개의 단어일 뿐인데도, 그 너머에서 한국의 공기와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과 심장이 미세하게 전달된다.검색어라는 것은 …
    2025-12-13 
    –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연출인지조차 모르게 된 사회에 대하여 –우리는 지금,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워지는 기묘한 시대에 서 있다.‘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오래된 격언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오히려 “보는대로 믿지 마라”가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
    2025-12-06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2025년을 한 달여 남겨둔 지금, “참 세월이 빠르다”, “올해도 잘 마무리해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아쉬움과 감사, 다짐이 교차합니다. 올해 텍사스 한…
    2025-11-29 
    ‘선거철 한 표’로 취급할 것인​가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제114조에 명시된 헌법재판소, 감사원과 함께 3대 헌법상 독립기관이다.국가의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중립성을 확보하며, 국민의 참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을 존재 이유로 하는 기관이다. 특히 재외…
    2025-11-22 
    요즘 달라스의 날씨가 정말 좋다. 아침이면 서늘한 바람이 공기를 가르고, 낮에는 햇살이 나뭇잎을 부드럽게 감싼다. 하늘은 높고, 구름은 느리게 흘러간다. 가을이다. 완연한, 그리고 짙은 가을이다.나는 이 계절을 참 좋아한다. 단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온 때문만은 아니…
    2025-11-15 
    H마트 해리하인즈점 개장을 통해 되살아나는 ‘달라스 코리아타운’의 의미달라스 북서부 해리하인즈(Harry Hines) 일대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때 ‘달라스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던 이 지역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인 사회의 중심지였다. 로얄 레인(…
    2025-11-0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