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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데스크칼럼

[기자의 눈] 멀리 있어도 같은 타임라인을 살았다…검색어로 읽는 한국의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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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5-12-13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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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국장 최현준
보도국장 최현준

2025년의 끝자락, 달라스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던 어느 저녁에 올해의 한국 검색어 목록을 펼쳐 보니, 마음이 잠시 멈춰 선다. 화면 속 몇 개의 단어일 뿐인데도, 그 너머에서 한국의 공기와 분위기, 사람들의 표정과 심장이 미세하게 전달된다.


검색어라는 것은 늘 솔직하다.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어디에서 위로를 찾으려 했는지, 어떤 문제 앞에서 멈칫했고 어떤 갈등을 통과해 왔는지. 그 날것의 기록들이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떠오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단어들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같은 시간의 결을 지나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국경이 거리를 만들었을 뿐, 마음의 반응과 기억의 방향은 여전히 고국과 연결되어 있음을 검색어가 가장 먼저 증명한다.


2025년의 한국은 소란스러웠다. 거리에서, 뉴스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검색창에서.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올해의 검색어는 그 어느 해보다 날것의 시대 정서를 드러낸다. 대통령 선거, 챗GPT,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정치와 기술, 그리고 엔터테인먼트가 서로를 밀치며 상위권을 차지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싶어 했고, 무엇에 마음을 쓰고 살아왔는지, 데이터는 거짓 없이 말해준다. 


올해 한국 검색어 1위는 바로 '2025년 대통령 선거'다. 그 한 줄 안에 정치의 파도와 사회적 긴장, 그리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복잡하게 켜켜이 쌓여 있다. 여기 미국에서도 시차를 뒤로하고 생중계를 틀어놓던 밤이 떠오른다. 울고 웃던 한국의 새벽과 우리는 같은 타임라인을 살았다. 


대선’ 검색량의 급등은 한국 사회가 정치적 변화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경제와 생활, 언어와 일상의 결까지 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무게를 가진 선택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파장은 바다를 건너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닿았다.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어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진동에 마음이 흔들리는 속도만큼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관심은 떨어지지 않았고, 거리는 결코 단절이 되지 않았다.


검색 데이터 속 또 하나의 축은 생계였다. ‘소비쿠폰 신청 방법’, 지원 제도, 정책 변화, 각종 혜택. 검색은 곧 생활의 체온이다. 사람들은 불안한 경제를 체감했고, 제도와 혜택, 작은 숨구멍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 기능적 검색어는 작은 절약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이고,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버티기 위한 데이터 수집이기도 하다. 비단 육아 가정이나 자영업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시민 사회 전반이 ‘체감 경제’를 해석하기 위해 검색창을 두드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이 신호는 낯설지 않다. 달라스에서 장을 볼 때 우리는 ‘Egg price Texas 2025’ 같은 검색을 열어보곤 했다. 물가, 고용, 정책 변화는 국경을 넘어 비슷한 무게로 다가온다.


그러나 올해의 검색어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정치와 경제가 한쪽에서 긴장과 불안을 끌어올렸다면, 다른 쪽에서는 확실한 ‘엔터테인먼트의 탈출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봉준호의 〈미키17〉, K-POP 신곡들이 검색 상위권에 오른 사실은 그 증거다. 사람들은 고단한 하루에도 음악을 찾았고, 예고편을 저장했고, 작은 밈 하나로 웃음을 나눴다. 그 일상적인 클릭들은 단순한 취향의 반응이 아니라, 버티기 위해 마련한 조용한 숨구멍처럼 보인다.


이 흐름은 한국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사실 달라스에 사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운전하며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오는 케이팝 한 곡이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트 주차장에서 잠시 멈춰 듣는 멜로디 한 줄이 고국의 온도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문화는 체류지나 국적을 나누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든 비슷한 방식으로 피로를 식히고, 다시 하루를 견딜 힘을 찾는다.


올해 트렌드를 규정한 또 하나의 핵심 단어는 AI, 챗 GPT다. 챗 GPT 뿐 아니라 제미나이·퍼플렉시티·제타 등 새로운 AI 모델명들이 연이어 상위권에 올랐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AI를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닌 ‘현재의 도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검색창은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교실 같았다. 기술을 배운다는 건 살아남기 위한 문해력의 확장이고, AI 리스트 상위권은 그 학습이 이미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한국은 적응 속도가 빠른 사회였고, 그 민첩함이 검색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올해 검색 흐름을 불안·갈등·피로감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피로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을 찾았고, 갈등 속에서도 사람들은 질문했고, 불안 속에서도 대안을 검색했다. 국가가 흔들려도 사회는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한국은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데이터는 단순한 한국 뉴스가 아니다. 고국이 불안하면 우리의 시선도 불안해지고, 한국이 혁신하면 우리도 동시대성을 확인한다. 검색 기록은 국경을 넘지 못하지만, 의미는 언제나 우리에게 도착한다.


2025년이 저물어 간다. 검색 기록 속 이 한 해는 위로가 필요했고, 답을 찾고 있었고, 그럼에도 문화와 기술을 향해 손을 뻗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 노력과 긴장은 지금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적과 시차를 넘어 결국 같은 시간을 살았던 셈이다.


한 해의 검색어는 물음표의 집합이다. 우리는 질문했고, 찾아봤고, 배우려 했다. 2026년의 검색창이 더 많은 느낌표를 품기를, 근심보다 기회를 더 많이 보여주기를, 그리고 멀리서도 마음 놓고 응원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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