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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데스크칼럼

기본이 있는 자와 없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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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오피니언 댓글 0건 조회 3,232회 작성일 22-04-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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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옥살이를 하던 한 목수가 집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우선 주춧돌부터 그린 다음 그리고 기둥을 세우고 그 다음 서까래와 대들보를 얹고 맨 마지막에 지붕을 덮는 순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는 그분이 집을 그리는 순서를 보고 있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록 낙서하듯 그리는 것이었지만 그분은 우리가 생각하던 일반적 상식을 모두 뒤엎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70년대 전후 유신정권 시절 <빨갱이>로 몰려 20여 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고 신영복 선생은 그의 에세이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가 진짜 <빨갱이>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그의 글 자체는 이념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보통 우리의 경우는, 집을 그리려면 먼저 지붕부터 그리고 그 다음 기둥과 벽을, 이어 문짝을 달고… 하는 순서로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알았다. 사실 어느 누구도 그 모순점에 대해 지적해주는 일이 없었고 우리는 그것이 그냥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은 그 목수의 그림을 보고 때 늦게나마 지금까지의 우리들 생각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비로소 깨달았다면서, 지금부터라도 그 교훈을 마음 깊게 새기겠다고 하였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기초 없이 집을 설계하고 지은 것과 다름없이 세상을 살아왔지 않았나싶다. 즉 기본적으로 사람이 배워야 할 인성이 바탕이 된, 기초가 튼실히 다져진 <사람다운 사람>보다는 뭔가가 부실했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불안하고 매사에 자신이 없었던 게 아니었나 느껴졌다.

그래서 그 <불안>과 <자신 없음>은 온갖 <패거리 문화>를 잉태하며 온 동네로 퍼져 나가, 언젠가부터 걸핏하면 떼거리 지어 목청 높이고 거짓말 잘 하는 사람들만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반공’의 표어 대신 좌파다 우파다 하는 철 늦은 이념 논쟁으로 편을 갈라 아직도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혹자는 그 말이 뭔가 적절하지 않았는지, 새삼 진보다 보수다로 포장하고 더 나아가 ‘합리적 좌파’ ‘진보적 보수’ 운운하며 소위 ‘뺑끼’ 칠로 교묘하게 편짜기를 부추기고 있는 게 요즘의 세상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철 지난 이념 논쟁은 정치꾼들이 일부러 소환하여 만든 말장난이고 짜서 맞춘 프레임일 뿐이다. 진보거나 보수거나 우선 보편적 상식이 바탕이 되어 국리민복의 양 기둥이 되어 체크 앤드 밸런스가 유지한다면 사회가 시끄러울 이유가 한 개도 없다. 

다시 신영복의 얘기로 돌아가자. 돌이켜보면, 약 50여 년 전 이른바 <빨갱이> 오명으로 청춘을 감옥에서 보냈던 신영복 선생은 요즘의 소위 <좌빨>들과는 근본이 틀리다. 네가 어찌 알아? 물어보겠지만, 나는 그분을 ‘국민학교’ 시절부터 같이 자라 그분의 타고난 인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같은 동향으로 그의 형제들도 내 고추 친구였고 집안끼리도 가까웠으며, 또한 그분의 선친은 당시 드문 신시대 교육자로써 내 조부와 향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영복 선생은 선천적으로 <상식>의 세계에서 살았고, 삶에서 기본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를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고 할까.  

이를테면, 신영복 선생은 당시 서슬 퍼렀던 박정희 정권 아래서도 그들이 기분 나빠하는 사회주의 경제 이론을 강의했어도,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국경일 행사에 애국가 대신 <님을 위한 행진곡> 따위를 부르는 코미디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 국리민복을 강의하더라도 어찌 보면 때 묻지 않는 유토피아적 순수성 때문에 당시 금기시되었던 사회주의 이론을 부끄러움 없이 열강했었다. 그래서 그런 괘씸죄(?)가 박정희를 화나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알기론 그는 진짜 알배기 순수 ‘진보주의’학자였다. 지금의 얼치기들은 그와는 다르다. 무조건 ‘프레임’을 정해 놓고 그 논리에 안 맞으면 전부가 적이고, 적이 되면 처치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정론이라 한다. 

원컨대, 참 언제나 그런 부류들이 사라질까? 설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 가진 ‘주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최소한 불문율의 ‘하늘 법’인 기본 상식이 삶의 근본이 되는, 앞서 말한 기초 튼튼한 목수 같은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을지…새로이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손용상 논설위원

 

※ 본 사설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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