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가족사진, 다시 쓰는 역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919회 작성일 25-01-31 11:33

본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이 사진이 좋아? 아니면 이게 나아?” 남편은 컴퓨터 화면을 넘기며 하나하나 사진을 클릭해 보여줍니다. 맘에 드는 걸 고르라며 자꾸 보채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오래전부터 파더스 데이를 가족사진을 찍는 날로 정해두었던 남편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내 생일날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 것입니다. 파더스 데이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찍은 사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장 건질 만한 사진이 있어 노력한 보람은 있었습니다.


사진을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시선이 머뭅니다. “내 눈이 너무 처졌어. 조금만 올려주면 안 될까?” 남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이것저것 보정해달라고 조르는 내 모습이 마치 세월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에 남긴 흔적들은 자연스럽다고 하기엔 조금 서운하고, 그렇다고 모두 지우기엔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망설여집니다. “나중에 리언이가 이 사진을 보면 할머니가 예쁜 게 낫지 않을까?” 가벼운 농담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남편을 슬쩍 설득해 봅니다. 코를 세우거나 턱을 깎는 건 무리더라도, 조금 덜 측은해 보이도록 눈가를 정리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나온 인생도 보정이 필요할 만큼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나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납니다. 후회스러운 결정, 놓쳐버린 기회,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 하지만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자라며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모든 아쉬움도 희미해집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가 봅니다. 살아온 순간들을 붙잡아, 그것이 좋았든 아팠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요.


  이번 사진은 우리 가족에게 더 특별합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찍는 가족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제 갓 스무 달이 된 아이는 트라이팟 위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렌즈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네 명이던 가족이 여섯이 되어 찍는 첫 가족사진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웃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가족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최고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남편이 늘 하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남편은 꼭 가족사진이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가족사진은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그 가정의 작은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사진은 마치 나이테처럼,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새기고, 부모가 세월을 겪어내는 흔적을 기록합니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역사로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깊어지는 보물입니다. 물려줄 큰 재산은 없지만, 함께한 시간만큼은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남편의 마음이 새삼 이해됩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촛불을 끄고 생일 케이크를 자릅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케이크를 신기해하며 두 번이나 더 먹어보더니, 입맛에 맞지 않는지 작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러다 사레가 들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더니, 어느새 하품을 시작합니다. 잘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습니다. 아이는 떠날 채비를 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신발을 신더니 한 명씩 꼭 안아줍니다. 그리고 배꼽인사를 하며 오늘의 감동을 남긴 채 떠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이, 첫 번째 가족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질 것입니다.


  벌써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어느새 설날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이 오고, 때로는 그 선택들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오늘처럼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주어진 삶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과 결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불신과 의심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우리 가족만큼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사진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 아이들이 펼쳐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s)은 미국에서 가장 늦게 193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지만 좋은 기후 조건과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은 곳이어서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
    여행 2025-09-13 
    에밀리홍 원장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email protected]새 학기가 시작되며 미국 대학 입시는 본격적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Common App이 열리고 10월부터 EA/ED…
    교육 2025-09-13 
    해마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말, 엘에이에서 열리는 미주 문학캠프는 미주 문인들의 가장 큰 축제이다. 캘리포니아는 물론, 알라스카, 하와이, 텍사스 등 미 전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모이며, 2박 3일의 캠프와 3일간의 문학여행도 포함된다. 특히 해마다 국내…
    문학 2025-09-13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조지아주 엘라벨(Ellabell)에 위치한 현대-LG 배터…
    회계 2025-09-13 
    크리스틴손,의료인 양성 직업학교,DMS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469-605-6035)미국 의료 현장은 환자의 치료와 돌봄뿐 아니라, 그 뒤를 받쳐주는 행정과 기록 관리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제대로 기능할 수…
    리빙 2025-09-13 
    조진석DC, DACBR, RMSKProfessor, Parker UniversityDirector, Radiology Residency Program at Parker UniversityVisiting Fellowship at the Sideny Kimmel Medic…
    리빙 2025-09-06 
    해외여행과 보험달력에 표시 해 놓고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여권과 비행기표 그리고 가방을 챙기고 빠트린 것이 없는지 돌아 보면서도 많은 경우 지나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보험이다. 만약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아프다면 여행중에 가방이라도 분실된다면 …
    리빙 2025-09-06 
    분주했던 2025년의 분기점을 지나 모두에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넘치며 감동을 가져다 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탐스런 비가 내립니다. 길고도 길었던 한해의 절반이 벌써 지나간다고 하니 뭔가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설렘으로 가득합니…
    여행 2025-09-06 
    미국 정부는 지난 수년간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차(Electric Vehicle, 이하 EV)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구매자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해 왔다. 이른바 EV Credit(전기차 세액공제) 제도인데 이 제도는 전기차 초기 보급을 촉진하고, 소비자…
    회계 2025-09-06 
    한국에 나와있다. 서울이 이렇게 더웠던가. 조그만 양산 그늘을 믿고 주민센터와 은행 일들을 보러 동네를 돌아다닌 날, 집에 와 거울을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목덜미까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찜질방 불한증막에서 나온 듯한 몰골이었다. 마지막에 들렀던 반찬 가게…
    문학 2025-09-06 
    SANG KIMREALTOR® | Licensed in Texas -Century 21 Judge Fite #0713470Home Loan Mortgage Specialist - Still Waters Lending #2426734 Senior …
    부동산 2025-09-06 
    축구장을 찾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박찬호와 추신수 덕분에 야구장은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축구장은 쉽사리 인연이 닿지 않았다. 더구나 한여름의 땡볕 아래 달라스의 경기장을 찾은 것은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경기는 저녁 7시 30분에 시작이었지만, 해가 아직 머…
    문학 2025-08-30 
    테네시주(Tennessee)에서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텍사스의 광활한 대지도 아니고 콜로라도의 장엄한 산새도 아니며 뉴욕처럼 인류가 만날 수 있는 화려한 인공미도 아닙니다. 단지 수수하게 그 모습을 남에게 보일 듯 말 듯하며 아기자기한 산새의 수려함을 가장 …
    여행 2025-08-30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잭슨홀 회의는 와이오밍주에 미국을 대표하는 엘로우스톤 국립…
    회계 2025-08-30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매년 봄, 미국 전역의 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합격자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SAT나 ACT 시험 정책 변화와 코로나 팬데믹 …
    교육 2025-08-2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