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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가족사진, 다시 쓰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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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574회 작성일 25-01-3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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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시인 / 수필가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이 사진이 좋아? 아니면 이게 나아?” 남편은 컴퓨터 화면을 넘기며 하나하나 사진을 클릭해 보여줍니다. 맘에 드는 걸 고르라며 자꾸 보채는 모습이 참 정겹습니다. 오래전부터 파더스 데이를 가족사진을 찍는 날로 정해두었던 남편이지만, 언제부턴가 그 약속이 흐지부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내 생일날 가족사진을 찍자”고 한 것입니다. 파더스 데이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찍은 사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몇 장 건질 만한 사진이 있어 노력한 보람은 있었습니다.


사진을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시선이 머뭅니다. “내 눈이 너무 처졌어. 조금만 올려주면 안 될까?” 남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이것저것 보정해달라고 조르는 내 모습이 마치 세월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에 남긴 흔적들은 자연스럽다고 하기엔 조금 서운하고, 그렇다고 모두 지우기엔 나를 잃어버리는 것만 같아 망설여집니다. “나중에 리언이가 이 사진을 보면 할머니가 예쁜 게 낫지 않을까?” 가벼운 농담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남편을 슬쩍 설득해 봅니다. 코를 세우거나 턱을 깎는 건 무리더라도, 조금 덜 측은해 보이도록 눈가를 정리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나온 인생도 보정이 필요할 만큼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나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납니다. 후회스러운 결정, 놓쳐버린 기회, 더 잘할 수 있었던 일들…. 하지만 내 곁에서 건강하게 자라며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모든 아쉬움도 희미해집니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간직하는가 봅니다. 살아온 순간들을 붙잡아, 그것이 좋았든 아팠든 따뜻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으니까요.


  이번 사진은 우리 가족에게 더 특별합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처음으로 찍는 가족사진이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이제 갓 스무 달이 된 아이는 트라이팟 위에서 깜빡이는 카메라 렌즈를 한 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네 명이던 가족이 여섯이 되어 찍는 첫 가족사진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듯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 닮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함께 웃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영락없는 가족입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최고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 남편이 늘 하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남편은 꼭 가족사진이 있는가를 확인합니다. 가족사진은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그 가정의 작은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사진은 마치 나이테처럼,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새기고, 부모가 세월을 겪어내는 흔적을 기록합니다. 기쁨과 슬픔, 설렘과 아쉬움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역사로 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깊어지는 보물입니다. 물려줄 큰 재산은 없지만, 함께한 시간만큼은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남편의 마음이 새삼 이해됩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촛불을 끄고 생일 케이크를 자릅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케이크를 신기해하며 두 번이나 더 먹어보더니, 입맛에 맞지 않는지 작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러다 사레가 들려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더니, 어느새 하품을 시작합니다. 잘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가족들은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습니다. 아이는 떠날 채비를 하는 기색을 눈치채고, 신발을 신더니 한 명씩 꼭 안아줍니다. 그리고 배꼽인사를 하며 오늘의 감동을 남긴 채 떠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이, 첫 번째 가족사진 속에 영원히 남겨질 것입니다.


  벌써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어느새 설날이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이 오고, 때로는 그 선택들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속 오늘처럼 수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주어진 삶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안에서 자기만의 색과 결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불신과 의심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우리 가족만큼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이 사진 속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언젠가 아이들이 펼쳐볼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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