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백경혜] 선물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9-20 09:13

본문

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매일 아침 선물을 받는다.


선물은 언제나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쯤 떨어진 바닥에 놓여있다. 나는 그것을 무심히 집어 올린다. 하지만, 시간을 가늠키 어려운 어느 아침, 창밖으로 시커먼 구름이 비를 쏟아내는 광경을 보거나 혹은 동트기 전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날이면 나는 놓인 선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회색 털에 핑크색 코, 같은 톤의 핑크 꼬리를 달고 있는 손바닥 반만 한 쥐 인형. 몸통 중간쯤 털이 조금 뭉쳐있긴 해도 조그만 코와 갈색 털실로 만든 수염이 아직 잘 붙어있다. 쥐돌이는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쥐돌이는 고양이 이사벨의 선물이다. 이사벨은 눈빛 당당한 오렌지 태비로 오 년 전에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했다. 복슬복슬한 털에 귀여운 얼굴이지만, 솜뭉치 같은 발에 살벌한 발톱을 숨긴 유능한 사냥꾼이다. 선물을 물고 올 때는 야옹거리며 알려주는데, 부드럽지만 길게 끄는 발성에는 사냥에 성공한 자랑스러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있다. “떠들썩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너를 위해 가져왔어.”라고 하는 것 같다. 내 앞에 쥐돌이를 내려놓으면 고맙다고 머리를 쓸어준다. 선물은 보통 한밤중에 두고 가는데, 잠결에도 인사는 빼먹지 않으려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야옹이가 쓸쓸할 것 같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멀리 던져 주었다. 전에 키웠던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장난감을 다시 물어왔고 거듭 던져줄수록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사벨은 달랐다. 날아간 쥐돌이 대신 나를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게 커진 채 흔들리는 눈동자, 어리둥절한 눈빛. 선물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거였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고양이 행동 전문가에 의하면, 사냥감이나 인형을 물어오는 것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가족을 돌보는 것과 은혜를 갚는 것,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주로 암컷이 그러는 거로 보아 새끼 양육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털도 없는 길쭉한 팔다리로 느리게 걷는 나는 사냥 실력이 신통치 않아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빼먹지 않고 매일 그릇에 먹이를 채워주니 고마운 것일까.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든 쥐돌이는 내게 나눠주는 사냥물임이 틀림없다. 

가끔 쥐돌이를 감추어 본다. 사냥이 더 흥미로워지기를 바라서다. 연필꽂이 안, 소파 쿠션 사이, 탁자 위 화병 속. 이사벨은 쥐돌이를 어김없이 찾아내 가져다준다. 야생에서라면 작은 뱀이나 쥐를 받았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였다면 착실한 이사벨 덕을 봤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 작은 고양이를 의지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신뢰란 성실함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처음 만날 때 이사벨은 삼 개월 아기였다. 길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구조되어 사람을 무서워했고 보호소 숨숨집 구석에 숨어있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소파 아래에서 생활하던 이사벨이 마음을 열고 다가와 드디어 무릎에 올라와 앉던 날, 쓰다듬는 것도 두려워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이사벨은 샤워를 마친 샤워 부스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문을 열어주면 젖은 바닥에 앉아 하수구를 바라보는데, 인터넷 정보를 찾아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태어나 엄마 젖을 먹던 때가 달라스에 비가 많은 5월이었으니 축축한 바닥에 익숙할 것이다. 어느 처마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던 건 아닐까. 따뜻한 엄마 품에서 5월의 꽃향기와 비 냄새를 맡던 그때의 행복을 희미하게 추억하는 것이면 좋겠다. 귀나 꼬리의 움직임과 미세한 눈빛으로 나는 고양이와 소통한다. 마음의 진도에 맞춰 천천히 친해지는 과정은 항상 은근한 기쁨이 된다. 


인간과 다른 종들, 즉 동물이나 식물과의 교감은 오랫동안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식물은 우리의 손길에 반응하며 자라난다. 텃밭의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정성껏 키운 나무가 꽃을 피워낼 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식물을 키우며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결과를 맡기는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반려동물은 정서적 동반자로 이미 우리 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 야생동물은 어떠한가. 여행 중 예기치 않게 사슴을 만나거나, 광활한 초원을 달려가는 회색늑대를 발견할 때 나는 인간이 자연의 작은 일부에 불과함을 실감한다. 사자와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정성껏 상대를 배우고 존중할 때 맹수와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침팬지, 코끼리, 돌고래 등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을 볼 때면 더욱더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지구 동료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최대 포식자로서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집에는 펠리스 카투스(Felis catus)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사이좋게 함께 살고 있다. 아침엔 깨어나서 기쁘다고, 퇴근하면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고 내 품에 안겨 머리를 기대는 이 작은 맹수는 그 자신 자체가 내게 신비로운 선물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사벨의 마음을 줍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상업용 건물의 보험료 산출기준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집을 위한 집보험이 필수적이듯이 상업용 건물 소유주에게는 상업용 건물보험이 필수적이다. 그러면 이런 상업용 건물의 보험료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보험료가 책정되는 것인지 알아 볼 필요가 있다.기본적인 보험료 산출은…
    리빙 2024-10-04 
    10월의 첫날 축복받은 시간에 콜로라도의 멋진 산길을 원 없이 달려볼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숨을 쉬고 있고 시간을 쫓아 삶의 이상향을 찾아갈 수 낭만이 있어서 입니다. 도로를 따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득 메운 10월의 아스펜 단풍 향연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모…
    여행 2024-10-04 
    지난번 컬럼에서 2023년도 세금보고를 4월15일전에 IRS에 연기요청을 한분들은 마지막 마감일이 통상 10월15이었는데 달라스,덴톤, 콜린 카운티등에 거주하거나 비즈네스가 있으신분들은 올해에는 최종마감일이 10월15일이 아닌 11월1일이라고 IRS 발표를 설명해드렸다…
    회계 2024-10-04 
    오늘의 주제는 ‘버섯의 종류와 효능’이란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이 세상에 버섯종류는 실제로 약 1만 5천개 정도라고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식용버섯은 불과 1000~2000개라고 하며 이중에 대부분은 야생버섯이며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버섯은 30개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리빙 2024-10-04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한국에서는 양력 날짜 옆에 음력도 같이 표시해두는 달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의 …
    리빙 2024-10-04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
    문학 2024-10-04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대학 지원 절차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며 떠오르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내가 명문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이다. 특히 아…
    리빙 2024-09-27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오늘은 중국 매운 음식의 대명사인 마라로 만든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마라(麻辣)에서 마(麻)는 마비가 된 것처럼 얼얼한 매운맛을 의미하고 라(辣)는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매운맛을 의미합니다.마라탕의 뿌리는 중국 사천(四川)에 …
    리빙 2024-09-27 
    지난 밤 늦게 도착하여 머문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의 밤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높이를 알 수 없는 산들이 진하디 진한 하늘의 빛을 삼켜버린 환한 달빛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비치는 모습에 이곳이 높은 고지임을 …
    여행 2024-09-27 
    세상에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재테크 책과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그럼, 그 책을 읽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왜일까?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보다는…
    부동산 2024-09-27 
    들판에 하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멀게 느껴지며, 여름내 피고 지던 야생 해바라기가 시들어갈 즈음이면 추석무렵이다. 미국 와서 강산이 몇 번 변할 만큼 살았는데도 난 아직도 한국의 절기를 고집한다. 예전에는 쩔쩔끓는 날씨에 ‘처서’나 ‘백로’를…
    문학 2024-09-27 
    24절기 중 16번째 절기인 추분이 막 지나는 시점이다. 이제부터는 밤이 길어지고 여름의 열기도 식는 계절로 접어드는 때이다. 연방 준비 위원회(연준)이 파격적으로 0.5%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의장 파월은 시기적절을 거론하며 금리인하를 이루어 냈다. 연준 회의에…
    회계 2024-09-27 
    이번 달에는 손님들이 궁금해 하시고 가장 많이 질문하시는 3가지 부분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한다.1. 디덕터블일반적으로 Collision 커버리지가 있다면 우리보험측에서 우선적으로 보상이 가능하지만 디덕터블은 (대부분 500불 아니면 1000불) 먼저 내가 차를 수리하는…
    리빙 2024-09-20 
    자동차의 책임과 보험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은 다양한 형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우리는 위험의 가능성 줄이기, 위험을 피하기, 위험을 수용하기, 위험부담을 전가하기, 등등이 있는데 보험은 적정한 비용을 보…
    리빙 2024-09-20 
    구름이 로키산 허리를 금세 휘어 감싸더니 새하얀 빙설에 비쳐 눈이 시리도록 맑던 하늘이 금새 긴 꼬리를 내린 채 하염없는 계절의 푸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로키산을 여행하려면 등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야 합니다. 호수가 많이 몰려 있는 베어 레이크(B…
    여행 2024-09-20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