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백경혜] 선물

페이지 정보

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1,494회 작성일 24-09-20 09:13

본문

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매일 아침 선물을 받는다.


선물은 언제나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쯤 떨어진 바닥에 놓여있다. 나는 그것을 무심히 집어 올린다. 하지만, 시간을 가늠키 어려운 어느 아침, 창밖으로 시커먼 구름이 비를 쏟아내는 광경을 보거나 혹은 동트기 전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인 날이면 나는 놓인 선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회색 털에 핑크색 코, 같은 톤의 핑크 꼬리를 달고 있는 손바닥 반만 한 쥐 인형. 몸통 중간쯤 털이 조금 뭉쳐있긴 해도 조그만 코와 갈색 털실로 만든 수염이 아직 잘 붙어있다. 쥐돌이는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쥐돌이는 고양이 이사벨의 선물이다. 이사벨은 눈빛 당당한 오렌지 태비로 오 년 전에 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했다. 복슬복슬한 털에 귀여운 얼굴이지만, 솜뭉치 같은 발에 살벌한 발톱을 숨긴 유능한 사냥꾼이다. 선물을 물고 올 때는 야옹거리며 알려주는데, 부드럽지만 길게 끄는 발성에는 사냥에 성공한 자랑스러움과 조심스러움이 묻어있다. “떠들썩하게 굴고 싶진 않지만, 너를 위해 가져왔어.”라고 하는 것 같다. 내 앞에 쥐돌이를 내려놓으면 고맙다고 머리를 쓸어준다. 선물은 보통 한밤중에 두고 가는데, 잠결에도 인사는 빼먹지 않으려 한다. 아무 말도 안 하면 야옹이가 쓸쓸할 것 같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멀리 던져 주었다. 전에 키웠던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장난감을 다시 물어왔고 거듭 던져줄수록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사벨은 달랐다. 날아간 쥐돌이 대신 나를 올려다보았다. 동그랗게 커진 채 흔들리는 눈동자, 어리둥절한 눈빛. 선물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거였다. 고양이와 강아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고양이 행동 전문가에 의하면, 사냥감이나 인형을 물어오는 것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가족을 돌보는 것과 은혜를 갚는 것,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주로 암컷이 그러는 거로 보아 새끼 양육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털도 없는 길쭉한 팔다리로 느리게 걷는 나는 사냥 실력이 신통치 않아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빼먹지 않고 매일 그릇에 먹이를 채워주니 고마운 것일까. 두 가지 중 어느 쪽이든 쥐돌이는 내게 나눠주는 사냥물임이 틀림없다. 

가끔 쥐돌이를 감추어 본다. 사냥이 더 흥미로워지기를 바라서다. 연필꽂이 안, 소파 쿠션 사이, 탁자 위 화병 속. 이사벨은 쥐돌이를 어김없이 찾아내 가져다준다. 야생에서라면 작은 뱀이나 쥐를 받았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였다면 착실한 이사벨 덕을 봤을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 작은 고양이를 의지한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신뢰란 성실함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처음 만날 때 이사벨은 삼 개월 아기였다. 길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구조되어 사람을 무서워했고 보호소 숨숨집 구석에 숨어있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소파 아래에서 생활하던 이사벨이 마음을 열고 다가와 드디어 무릎에 올라와 앉던 날, 쓰다듬는 것도 두려워해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었다. 이사벨은 샤워를 마친 샤워 부스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문을 열어주면 젖은 바닥에 앉아 하수구를 바라보는데, 인터넷 정보를 찾아봐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태어나 엄마 젖을 먹던 때가 달라스에 비가 많은 5월이었으니 축축한 바닥에 익숙할 것이다. 어느 처마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았던 건 아닐까. 따뜻한 엄마 품에서 5월의 꽃향기와 비 냄새를 맡던 그때의 행복을 희미하게 추억하는 것이면 좋겠다. 귀나 꼬리의 움직임과 미세한 눈빛으로 나는 고양이와 소통한다. 마음의 진도에 맞춰 천천히 친해지는 과정은 항상 은근한 기쁨이 된다. 


인간과 다른 종들, 즉 동물이나 식물과의 교감은 오랫동안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식물은 우리의 손길에 반응하며 자라난다. 텃밭의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고 정성껏 키운 나무가 꽃을 피워낼 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식물을 키우며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결과를 맡기는 자연의 섭리를 배운다. 반려동물은 정서적 동반자로 이미 우리 생활에 자리 잡고 있다. 야생동물은 어떠한가. 여행 중 예기치 않게 사슴을 만나거나, 광활한 초원을 달려가는 회색늑대를 발견할 때 나는 인간이 자연의 작은 일부에 불과함을 실감한다. 사자와 우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정성껏 상대를 배우고 존중할 때 맹수와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닌가. 침팬지, 코끼리, 돌고래 등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을 볼 때면 더욱더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지구 동료들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최대 포식자로서 생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집에는 펠리스 카투스(Felis catus)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사이좋게 함께 살고 있다. 아침엔 깨어나서 기쁘다고, 퇴근하면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고 내 품에 안겨 머리를 기대는 이 작은 맹수는 그 자신 자체가 내게 신비로운 선물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사벨의 마음을 줍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자녀를 낳아 키워보면 알 수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지만, 부모가 가지지 않은 면도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을. …
    리빙 2025-10-25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연방정부 셧다운이 이번 주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과…
    회계 2025-10-25 
    지극히 맑고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서 곱게 물든 길가의 아련한 추억들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써 놓은 가을의 언어는 벌써 새벽 앞에 손을 비비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간직했던 추억 가운데 가을과 연관되는 많은 추억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어디론가…
    여행 2025-10-25 
    김재일 (Jay Kim) 대표현 텍사스 교육청 (TEA) 컨설팅전직 미국 교육부 (U.S Department of Education) 컨설팅전직 텍사스 공립학교 교장[들어가기 전] 지난 칼럼 이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문의를 주셨습니다. 이번 주 칼럼을 읽으신 뒤 …
    교육 2025-10-18 
    자동차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소들자동차 사고는 보험료 인상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는 사건이므로 사고를 야기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제거해야 한다.자동차 사고에 영향을 주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
    부동산 2025-10-18 
    엑셀 카이로프로틱김창훈원장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email protected] MacArthur Blvd suite 103, Lewis…
    리빙 2025-10-18 
    고대진작가◈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
    문학 2025-10-18 
    살포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세월 내내 묵은 때들이 훌훌 말끔히 벗겨지고 대지엔 생동감 넘치는 계절의 푸르름이 더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와플에 커피 한 잔 마시며 밤새 들리는 한 줄기의 빗소리 속에 찾아오는 삶의 징검다리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여행 2025-10-18 
    서윤교 CPA미국공인회계사 / 텍사스주 공인 / 한인 비즈니스 및 해외소득 전문 세무컨설팅이메일: [email protected]– 마감일의 의미와, 기한을 놓친 납세자를 위한 실질적 대처법 –미국의 개인소득세 보고 기한은 원칙적으로 매년 4월 15일이다. 그러나 많은 …
    회계 2025-10-18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화이트칼라 입문직은 줄고, 기술직 수요는 확대AI가 흔드는 전통적 성공 공식지난 수십 년간 미국 사회에서 성공의 공식은 비교적 단순했다. 명문대 진학, …
    교육 2025-10-18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배움의 기쁨이 있고,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스승이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하찮은 특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내가 …
    여행 2025-10-11 
    에밀리홍 원장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버클리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email protected]가을 학기가 시작되면서 미국 대학 입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조기 지원에만 집중하지만, 그보다 앞서…
    교육 2025-10-11 
    얼떨결에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주 한국 소설협회 회장을 맡고 나서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리더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미주 소설가 대부분이 캘리포니아주 등 다른 주에 거주하는데, 이 먼 텍사스에서 소설협회에서 필요한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
    문학 2025-10-11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연방정부는 지난 10월 1일 0시 1분부터 셧다운에 돌입했…
    회계 2025-10-11 
    크리스틴손,의료인 양성 직업학교,DMSCare Training Center 원장(www.dmscaretraining.com/ 469-605-6035)의료인의 영어: 자격증 그 이후의 진짜 경쟁력미국에서 의료 분야에 종사하기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저희 DMS 학교를 통…
    리빙 2025-10-1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