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고대진] 3월의 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문학 댓글 0건 조회 2,683회 작성일 24-06-21 16:59

본문

고대진 작가
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몇 년 전 3월 콜로라도의 산간 도시 볼더(Boulder)에 머물렀을 때다. 아침결에 조금씩 내리던 눈발이 오후 무렵이 되면서 천지를 휩싸며 내렸다. 펑펑 내리는 눈송이들은 바람을 타고 허공을 휘휘 돌면서 춤을 추고 있다. 땅에 안착하지 못하고 공중을 떠도는 것이 마치 살아있어 나는 것 같다. 마치 허공을 향해 내뱉는 말소리 같다. 김수영 시인은 <눈>을 떠올린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지기 전 춤추던 눈이 떨어진 뒤에도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단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참았던 기침을 마음껏 하라고 살아있는 눈 위에 마음껏 하고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으라고 한다. 끓어오르는 가래조차 삼켜야 했던 어두운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왜 시를 쓰냐고 혹은 왜 시를 읽느냐고 물으면 나는 사실 할 말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시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굳이 대답하자면 그저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꿈 꾸는 세계를 만들고 싶은 욕망? 두 세계가 부딪혀서 만드는 긴장이 시를 만든다. 시를 읽는 것도 그렇다. 좋은 시는 내가 절 좋아하는 만큼 내게 상처와 어둠을 견딜 수 있는 세계를 보게 해주며 생각과 마음을 정돈 시켜주고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시를 통해 보는 세상은 더 넓고 더 아름답고 때로는 아프기도 하다. 내가 못 보던,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런 세상을 보기도 한다. 밤새 내리는 눈을 보면서 황 동규 시인의 시 <한밤으로>를 읽어본다. 


우리 헤어질 땐/ 서로 가는 곳을 말하지 말자./ 너에게는 나를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그걸 노래부를 힘만을.// 

눈이 왔다. 열한시/ 펑펑 눈이 왔다. 열한시.//

창밖에는 상록수들 눈에 덮이고/ 무엇보다도 희고 아름다운 밤/ 

거기에 내 검은 머리를 들이밀리.// 눈이 왔다. 열두시/ 눈이 왔다. 모든 소리들 입다물었다. 열두시.// 너의 일생에 이처럼 고요한 헤어짐이 있었나 보라/ 자물쇠 소리를 내지 말아라/ 열어두자 이 고요 속에 우리의 헤어짐을.// 한시/ 어디 돌이킬 수 없는 길 가는 청춘을 낭비할 만큼 부유한 자 있으리오/ 어디 이 청춘의 한 모퉁이를 종종걸음칠 만큼 가난한 자 있으리오/ 조용하다 지금 모든 것은.// 두시 두시// 말해보라 무엇인가 무엇인가 되고 싶은 너를./ 밤새 오는 눈. 그것을 맞는 길/ 그리고 등을 잡고 섰는 나/ 말해보라 무엇인가 새로 되고 싶은 너를.// 이 헤어짐이 우리를 저 다른 바깥/ 저 단단한 떠남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단단함. 마음 끊어 끌어낸....../ 너에게는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노래부를 힘만을.//

황동규 <한밤으로>의 전문

열 한시... 열 두시... 한 시... 두 시... 잠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모든 소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속에 어둠을 내리는 눈을 보며 너와의 이별을 생각하는 가슴은 둥둥 고동을 치면서 더욱 아파 온다. 너에게는 떠나버릴 힘 만을 나에게는 그걸 노래 부를 힘 만을 기원할 수 있는 시인의 마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마음 끊어 끌어낸 헤어짐으로 얻어질 단단함. 그러나 논리적 판단과 머리로만 끊음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저 떠나버릴 힘을 노래부를 힘을 기원할 뿐. 떠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일? 난 언제 죽음까지도 노래부를 수 있을까. 


지난 5월 22일 세상을 떠난 신경림 시인을 생각한다. 그의 시 <눈>은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해방됨을 기린다.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 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서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는다 해도/


어둡고 갑갑한 이 시절 몸의 감옥에서 벗어난 시인은 잎이 되고 꽃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었을까? 새가 되어 하늘 끝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얀 은가루가 되어 그의 다른 시 <떠도는 자의 노래>에서처럼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니고”있지는 않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벌써 가을의 문턱이 우리의 삶 깊숙한 곳까지 내려앉아 11월의 시간을 향한 발걸음을 바쁘게 재촉하고 있습니다. 가을이라는 설레는 계절에 우리의 일터를 잠시 탈출하여 곳곳에서 삶을 재 충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쉼이란 것은 삶의 정지라기보다는 도약을 위한 잠시 휴식이란 것을…
    여행 2025-11-08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연방정부의 셧다운이 길어지는 상황에 IRS 세출 중단 비상…
    회계 2025-11-08 
    REALTOR® | Licensed in Texas -Century 21 Judge Fite #0713470Home Loan Mortgage Specialist - Still Waters Lending #2426734 Senior Structur…
    부동산 2025-11-08 
    코피가 터졌다. 몸이 보낸 긴급 신호였다. 여전히 삼십 대인 줄 알고 몸을 몰아붙이는 날들이 많았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 주 1회 두 시간 반의 변화 속에서 터진 코피였다. 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문학 2025-11-08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길을 무심코 떠나면 그간 내 머리 속을 빙빙 돌며 삶의 많은 부분을 고민하게 했던 많은 부분들이 어느새 까마득하게 잊혀지고 그 속엔 내가 알 수 없는 평안함이 자리를 합니다. 여행길을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추억할 수 있는 낭만들이 주위에 가득합니…
    여행 2025-11-01 
    서윤교CPA미국공인회계사 / 텍사스주 공인 / 한인 비즈니스 및 해외소득 전문 세무컨설팅이메일:[email protected]— Dual Status 신고 시 주의해야 할 세금 함정과 절세 전략 — “이제는 미국 세법상 거주자입니다”매년 수많…
    회계 2025-11-01 
    오바마케어(ACA), 여전히 유효한 ‘국민 건강 안전망’ACA Health Insurance, 흔히 **‘오바마케어(Obamacare)’**로 불리는 이 법안은 2010년 3월 제정되어, 2014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 제도이다.정식 명…
    부동산 2025-11-01 
    조나단김(Johnathan Kim)-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졸업- 現 핀테크 기업 실리콘밸리 전략운영 이사카네기멜론·어스틴·UIUC 등 ‘실속형 명문’ 집중 분석… 한인 가정 위한 현실적 입시 전략대학 입시는 성적이 아니라 전략의 싸움이다. 합격률이 5% 미…
    교육 2025-11-01 
    13년 만에 부활한 MBC 대학가요제가 지난 3일 부산 국립한국해양대학교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본방 사수하겠다는 생각으로 26일 10시 50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1980년대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대학가요제가 시청률 저조라는 이유로 폐지되었을 때, 얼마나…
    문학 2025-11-01 
    공학박사박우람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자녀를 낳아 키워보면 알 수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지만, 부모가 가지지 않은 면도 많이 가지게 된다는 것을. …
    리빙 2025-10-25 
    박운서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email protected]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연방정부 셧다운이 이번 주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과…
    회계 2025-10-25 
    지극히 맑고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서 곱게 물든 길가의 아련한 추억들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써 놓은 가을의 언어는 벌써 새벽 앞에 손을 비비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간직했던 추억 가운데 가을과 연관되는 많은 추억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어디론가…
    여행 2025-10-25 
    김재일 (Jay Kim) 대표현 텍사스 교육청 (TEA) 컨설팅전직 미국 교육부 (U.S Department of Education) 컨설팅전직 텍사스 공립학교 교장[들어가기 전] 지난 칼럼 이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께서 문의를 주셨습니다. 이번 주 칼럼을 읽으신 뒤 …
    교육 2025-10-18 
    자동차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소들자동차 사고는 보험료 인상요인이 될 뿐만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는 사건이므로 사고를 야기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제거해야 한다.자동차 사고에 영향을 주는 위험한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
    부동산 2025-10-18 
    엑셀 카이로프로틱김창훈원장Dr. Chang H. KimChiropractor | Excel Chiropracticphone: 469-248-0012email:[email protected] MacArthur Blvd suite 103, Lewis…
    리빙 2025-10-18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