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TN 칼럼

[수필] 일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 KTN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5-03 17:19

본문

백경혜 수필가
백경혜 수필가

정확한 시간에 알람이 울린다. 

스누즈 버튼을 몇 번인가 누르며 버티다가 간신히 일어나지만, 옆으로 털썩 다시 눕는다. 시원한 이불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감는다. 이층에서 삐걱삐걱 아들이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난다. 마루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지만, 알람 소리를 이긴다.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올빼밋과에 해당하는 나는 기상 시간이 괴롭다.

아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돌아와 출근할 채비를 한다. 깔끔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물건값을 지나치게 깎으려 드는 걸 알게 된 후 내키지 않아도 단장에 신경 쓰게 되었다.

가게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과 잠시 들러 안부를 나누는 친구, 그저 이야기가 하고 싶은 외로운 사람이 찾아온다. 사람이 들락거리는 그 공간에는 여러 사연이 엇갈리며 오고 간다. 수월한 손님도 있고 오랜 시간 머물며 힘을 빼는 손님도 있다. 장부에 적힌 판매 목록에는 그 손님만의 여운이 남는다.

열 시간의 혼돈을 마치고 가게 문을 닫으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오르기 바쁘다. 차 문을 닫고 크게 안도의 숨을 쉰다. 차들이 군데군데 빠져나가고 사위가 어두워진 주차장 풍경은 빠르게 뛰던 심장을 천천히 다독여 준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교를 즐길 만한 에너지는 없어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긴 시간 동안 나는 있는 힘을 다 써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대부분 부엌일은 내 몫이다. 저녁을 먹고 바로 누우면 뱃살이 찌겠지만, 소파에 몸을 던지고 새벽까지 잠드는 날이 적지 않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행이다. 언젠가는 RV를 한 대 장만하여 미국과 캐나다를 휘휘 돌아다니고 싶다.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삶을 살며 청바지 입고 백발을 날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캘리포니아로 달려가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거대한 삼나무 숲에 파묻히고, 유타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붉은 기암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돌고 나면 내친김에 RV를 배에 싣고 유럽대륙으로 들어가는 상상도 한다. 종종 최신 RV 들을 검색하고 탑재된 사양과 성능을 비교하다 보면 마음은 이미 별이 쏟아지는 국립 공원을 향해 달려간다. 

마음이 저만치 앞서 가면 일상은 지루한 군더더기가 되어 버린다.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다 주위 사람을 생채기 내며 돌진해 갈 때도 있다. 일상은 카뮈의 《시지프 신화》 속 형벌 같다고 생각해 왔다. 간신히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가고 그 바위를 산꼭대기로 다시 굴려 올리는 것을 되풀이하는 영원한 형벌이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집과 일터를 오가며 하루가 천천히 흘러가면 멀미하며 타고 가는 고속버스처럼 목적지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서 귀가 번쩍 열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 유명 강사 김미경의 강의였다. “꿈은 내 마음이 품는 소망이요 일상은 내 몸이 품는 소망이다. 탄탄한 일상이 있어야 그 위에 꿈을 세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 몸은 매일 세끼 밥을 먹고 푹신한 잠자리에서 자고 싶다. 매우 규칙적이지만, 몸이 원하는 것에 권태란 없다.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하루의 무탈함을 확인한다. 날씨가 더워지면 수박도 한 덩이 나눠 먹어야 하고, 배터리 성능이 떨어진 휴대전화도 바꿔 줘야 한다.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열어 신뢰받지 못하면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닌가. 게다가 착실하게 나의 몫을 감당하는 것은 가족뿐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이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는 ‘내 몸이 꾸는 꿈’이라는 것은 볼수록 옳은 말이었다. 

‘내 마음이 꾸는 꿈’도 성실한 일상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다. 몇 해 전부터 시큰거리기 시작한 무릎을 위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비싼 여행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돈도 열심히 모아야 한다. 여행가의 삶에도 일상이 펼쳐질 테니 어쩌면 꿈과 일상은 별개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헤아려 보면 일상 가운데도 꿈같은 요소들이 있다. 아침마다 학교 가는 차 안에서 아들과 교대로 나누는 기도 시간, 좋은 물건을 권할 때 나를 믿어주는 고마운 손님, 힘든 일을 겪을 때 함께 버텨주는 친구들이 그러하다. 평평하고 너른 땅 텍사스 특유의 찬란한 노을과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은 덤으로 주어진 축복이다. 

그날 이후 평범한 하루를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며칠 후로 내달리는 시야를 오늘로 끌어와 이 순간 정성껏 살아보자고 나 자신을 설득한다. 일상은 꿈이 자라는 토양과 같으니 이왕이면 옥토를 만들어야겠다. 

시지프 신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La lutte elle-même vers les sommets suffit à remplir un cœur d’homme; II faut imaginer Sisyphe heureux.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여야 한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나는 어렵사리 일어나 내일의 바위를 또다시 굴려 올릴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최선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RSS
KTN 칼럼 목록
    안녕하세요! 올해 역시 여름은 덥습니다. 오래 전과 비교하면 최근의 여름은 다소 더 습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미디어의 발달로 저희는 뜻하지 않아도 많은 정보를 받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식품도 이 정보의 홍수에 빠질 수 없는데요. 오늘은 세상에서…
    리빙 2024-07-26 
    이번 주 휴람 의료정보에서는 0~6세의 영유아에게 발생하고 있는 수족구병에 대해 휴람 의료네트워크 H+양지병원 소아청소년과 양 무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최근 0~6세 영유아 수족구병 환자가 크게 늘면서 예방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수족구병은 주…
    리빙 2024-07-26 
    678-972-3481David@IMSglobalmobility.comEmory University 법학박사한동대학교 국제법 석사Immigration Mobility Solutions 파트너 변호사미국 Fortune 500 기업 및 다국적기업 이민법 자문최근 몇 개월간…
    리빙 2024-07-26 
    우리는 때때로 미래를 알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미래를 알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아가며 한편으로 미래도 준비 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 너무 치우쳐서 미래를 무시 해서도 안되고 미래에 너…
    리빙 2024-07-26 
    여행 중에 생각지 못했던 아름다운 도시를 만나 그곳에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여행에 멋진 스토리가 있을까요? 삭막할 것만 같았던 도시에서 정겨운 카페를 만나고 여행의 피로를 내려놓은 공간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가득 머그잔에 넣…
    여행 2024-07-26 
    공인회계사 서윤교서비스에 대한 보수를 주고 받을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고용주(Employer)와 종업원(Employee) 또는 고용주와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 관계가 성립된다. 사실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상당히 혼란을 가져다 …
    회계 2024-07-26 
    ◈ 제주 출신◈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에세이집 <순대와 생…
    문학 2024-07-26 
    지난 컬럼에서 교통사고를 대처하기 위해 평상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할 사항들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고,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사고를 당했을 때 챙겨야 할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교통사고란 늘 갑작스럽게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을 해서 대처법…
    리빙 2024-07-19 
    대통령의 도시로 알려진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인 래피드 시티(Rapid City)를 출발하여 와이오밍(Wyoming)주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아침을 먹고 숙소…
    여행 2024-07-19 
    상업용 투자 전문가에드워드 최문의: 214-723-1701Email: edwardchoirealty@gmail.comfacebook.com/edwardchoiinvestments어떤 사람은 수익을 올리고 돈을 버는데 어떤 사람은 원금을 잃고 실패한다. 남들보다 정보가 …
    부동산 2024-07-19 
    아크로 폴리스의 중심부인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언덕위에 세워져있다. 이 신전은 기원전 5세기 경에 델로스동맹의 수장 페리 클래스가 페르시아 침략을 물리친 기념으로 건립했는데,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파르테논은 ‘처…
    문학 2024-07-19 
    박운서 CPA는 회계 / 세무전문가이고 관련한 질의는 214-366-3413으로 가능하다.Email : swoonpak@yahoo.com2625 Old Denton Rd. #508Carrollton, TX 75007바다건너 고국은 집권여당의 당대표 선출을 앞두고 그야말…
    회계 2024-07-19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오늘은 버터와 마가린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버터는 인류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시기에 등장한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식품입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 의해 발달한 후 주변 지역으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버터는 …
    리빙 2024-07-19 
    우리는 지금 고도의 정보화와 컴퓨터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어느때 보다도 삶의 편리함을 많이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많은 사고들을 보면서 문명의 발달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정도의 사고는 피…
    리빙 2024-07-12 
    결과가 말해주는 명문대 입시 전문 버클리 아카데미 원장www.Berkeley2Academy.com문의 : b2agateway@gmail.com2024 대학 입시 전략 2 화 : Rice 대학에 합격하고 싶다면, 이것을 강조!! Rice 대학은 텍사스 주에 사는 상위권 …
    교육 2024-07-1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