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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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은 늘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신년 초까지 이 주간의 휴가를 잡아놓는다. 마치 알사탕을 아껴 먹으려는 아이처럼, 다른 달에 휴가를 쓰자고 하면,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는 것처럼 연말은 꼭 비워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긴 해피 할리데이란 인사말처럼 이 기간은 미국사람들이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연휴이고, 미뤄둔 가족 모임이나 크고 작은 행사가 연일 계속되니, 긴 휴가가 필요한 시기 이기는 하다.
언젠가부터 미국 크리스마스 장식은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바로 시작하는 게 유행이 된 듯하다. 우리동네도 예외는 아니어서 12월이 되기 전에 지붕이 반짝이는 집들이 많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장식을 안 하는 집들이 하나 둘 늘어나더니, 지금은 동네 전체를 두고 보면 절반 정도는 우리집처럼 조용하다. 장식을 잘 하는 집들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부가 사는 집들이다. 나이가 들면 지붕을 올라가는 것도 큰 부담이고, 남에게 맡기자니 요즘은 라이트 설치하는 것도 가격이 덩달아 올라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몇 년 전에 지붕에 뭘 고치러 올라갔다 떨어진 뒤로는 지붕에서 뭘 하는 건 절대 사절이다. 우리가 아는 이웃은 해마다 지붕 맨 꼭대기 굴뚝 위에 레인디어가 끄는 썰매와 산타크로스를 설치하는데,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즐겁지만, 나중에 저걸 어떻게 내리나 싶어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올해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마저도 생략한 채 지나갔다. 몇 년 전부터 주위 분들이 아직도 트리장식을 하냐며 웃었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다 장성했고, 무엇보다 다락을 오르내리며, 장식품을 가져오는 것도, 나중에 치우는 것도 귀찮아서이다. 이곳에 산 햇수만큼, 모은 장식품들이 커다란 상자로 열 개는 넘는데, 이제는 서서히 그 상자들을 정리해야 할 것만 같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때 만든 오나먼트부터, 하나 하나 이민생활의 추억이 깃든 거여서 쉽게 버리지도, 남에게 주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어차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면 임자를 찾아 주어야 할 것 같다.
올해 크리스마스 연휴는 작은아들이 있는 오스틴에서 보냈다. 12월에 보름간 독일여행을 다녀온 아이는 독일이 몹시 추웠다고 했는데, 한 십 년은 다된 찢어진 청바지와 패딩하나 가져갔으니 그럴만도 했다. 너무 춥다 보니 그 유명한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도 별로였고, 무엇보다 맥주 맛이 미국 라거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작은애와 함께 날마다 맛있는 걸 해 먹으며 조용히 연휴를 잘 보냈다. 나이 서른 넘은 아들이 혼자 사니 이럴 때라도 맛있는 걸 해 먹이고 싶은 K 엄마의 못 말리는 자식사랑(?)의 결과로 나는 갈비찜, 새우튀김, 샤브샤브, 삼겹살 등등 재료만으로도 차 트렁크가 가득 차게 장을 봐갔다. 그런데도 모자란 재료는 오스틴 한인마켓에 가서 또 장을 봤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오스틴은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바톤 스프링스 란 공원엘 갔더니, 모두 비키니 차림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7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이 들었고, 겨울은 이미 지나가고 꼭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날씨 같았다.
어느덧 새해가 되었고, 붉은 말의 해여서 그런지, 연하장에는 역동적인 적토마들이 많이 등장한다. 적토마는 정사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말로, 동탁, 여포, 나중엔 조조가 타고 다녔다는 말로 하루 천리를 간다는데, 붉은빛이 도는 털에 토끼처럼 재빠르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열정과 활력이 넘치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을 일컬어 적토마 같다는 비유를 쓰는데, 적토마는커녕 당나귀보다 더 느리고 게으른 나는 이 새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목하 고민중이다. 작심삼일도 못 갈 새해계획 따위는 안 세운지 오래이고( 세우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의지박약인지 금방 탄로가 나기때문) 그저 하루 하루 재밌게, 즐겁게, 보람되게 자신의 건강이나 돌보면서 지낼 생각인데, 사실 그렇게 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마음 먹은대로 쉽게 되지 않는 것이 보통사람의 하루라는 걸 많이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격언은 써 붙여둘 예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IF you do nothing, nothing happen.
이 격언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새해 첫날부터 캠핑카를 끌고 주립공원에 캠핑을 다녀왔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트레일을 걷다가 사슴가족들도 만나보고, 처음 보는 작은 새와 인사도 나누고, 모닥불도 피우며, 아무 일이나 만들어 보았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무 일도 한 일이 없다> 라고 큰소리로 말해 보는 것이 좋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그러면 그것이 도움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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