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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2025미주 문학캠프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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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말, 엘에이에서 열리는 미주 문학캠프는 미주 문인들의 가장 큰 축제이다. 캘리포니아는 물론, 알라스카, 하와이, 텍사스 등 미 전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하는 회원들이 모이며, 2박 3일의 캠프와 3일간의 문학여행도 포함된다. 특히 해마다 국내외 유명작가를 초대하여, 문학강의를 듣는데, 올해는 소설 <새의 선물> 은희경작가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로 대한민국 시단을 흔든 박준 시인이 강사로 초빙되어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첫째 날은 주로 시상식과 두 강사의 강의를 듣고, 사이 사이 점심과 저녁이 뷔페로 제공된다. 미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문학단체인 <미주 문학>은 계간지마다 신인상을 제정하여, 미주문단을 이끌 신인들을 배출하는데, 올해의 시 부문 수상자는 92세의 강금순 할머니이다. 1.4후퇴때 기억을 되살려 쓴 <함박눈 내리는 날> 이란 시로, 우리모두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 더 없이 귀한 수상이었다. 또한 광복 80주년 기념 문학공모전을 실시하여, 소설부문과 시 부문 수상자가 두 명 더 나왔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두 수상자들이 이민 2세로 아주 젊은 친구들이고, 지인의 딸인 시 부문 수상자인 이웅희 양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반듯한 모국어로 광복절에 관한 시 까지 써서, 감동을 일게 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가족 모두가 글을 쓰는 부러운 문인가족 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은희경 작가를 90년대 대한민국 문단을 이끌었던 여류작가 중 한명으로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기억한다. 각자 개성은 다르지만, 그녀들이 7080세대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신경숙의 소설들과 학생운동 출신으로 <후일담 문학>을 통해 민주화운동과 개인의 양심이란 화두를 던졌던 공지영, 냉소와 유머로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리한 시선으로 통찰했던 은희경 작가가 그들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작가는 작은 체구에 여리디 여린 모습으로 어디에서 그런 작품을 쓰는 힘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소녀 같았다.
박준 시인 역시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내 놓은 시집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타고난 언어적 감각으로 감성이 물씬 배어 있는 시들이 젊은 세대는 물론 시 좀 안다는 노년층까지도 매료시키는 매력이 있는 시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탈한 모습으로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타자와의 공감을 강조한 강연을 해서 좋은 호응을 받았다.
130여명의 회원이 모인 문학캠프가 성황리에 끝나고, 스무명 남짓한 문인들이 문학여행길에 올랐다.문학여행지는 해마다 다른데, 작년엔 앤탈롭 캐넌이었고, 올해는 이 광활한 미 대륙에서 가장 신성한 기(?)가 많이 몰려 있다는 아리조나주 세도나였다. 지형적인 특징인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증명이 된 이 기가 충만한 동네는, 어쨌든 해마다 부족한‘기’를 채우려는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로 유명하다. 왜냐면 사람은 이 ‘기’ 가 빠지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말에는 기가 찬다, 기가 막힌다. 기가 팔팔하다, 기가 세다 등 기에 관한 수사가 무지 많다. 그런데 나는 종모양처럼 생긴 벨캐넌 앞에서 정말 말로만 듣던 기를 체험했다. 다리가 아파 캐넌 앞 벤치에서 쉬고 있는데, 뭔지 모르게 찌르르한 볼테이지가 느껴졌다. 곁에 있던 다른 문인들도 정말 손끝이 화끈해 지면서 , 주변 땅이 지진이 날 때처럼 작은 진동이 느껴진다고 하였다. 지나가던 두 명의 등산객들도 우리를 보더니, 그 장소가 맞다고,엄지척을 했다.
아무튼 세도나가 아니더라도 기를 주는 장소, 기를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건강한 기를 빼앗아가는 우울한 뉴스들보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영화들이 더 많이 나와 전 세계인들의 기를 지금처럼 팍팍 살려주었으면 좋겠다. 문학캠프를 다녀오니 계절은 벌써 처서를 지나 백로이다. <골든>의 가사처럼 ‘ 우리모두 황금처럼 빛날 존재’로 가을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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