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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데스크칼럼

[데스크 칼럼] 텍사스의 여름, 그리고 엄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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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댓글 0건 조회 289회 작성일 25-08-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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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편집국장 유광진
KTN 편집국장 유광진


2025년 7월, 달라스에서 살아가는 한인 싱글맘들의 이야기


7월의 텍사스는 덥다.

한낮의 열기는 자동차 문을 열기도 버겁게 만들고, 그 열기 속에서 장을 보고 아이를 픽업하고,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하루는 말 그대로 땀과 의지로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싱글맘’이라는 이름표를 단 엄마들의 여름은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조용하다.

그녀들은 북적이는 모임보다 아이의 급식비를 계산하는 일에 더 익숙하고, 여유로운 브런치보다 야간 알바의 스케줄을 맞추느라 분주하다.

가족의 구성원이 바뀐 뒤에도, 아니 오히려 그 이후부터 더욱 단단하게 살아가야 했던 이들.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부부로 왔지만, 이제 혼자입니다


달라스에서 만난 박민희(가명) 씨는 8년 전 남편과 함께 이민을 결정했다.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었어요. 미국의 교육제도도 그렇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러웠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언어 장벽,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부부 사이에 쌓인 오해와 갈등. 결국 두 사람은 3년 전 이혼을 선택했다.

“그 이후부터는 제 삶이 아니라 아이의 삶만 생각했어요.”

민희 씨는 낮에는 병원 리셉션, 저녁에는 한식당 서빙을 하며 딸아이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아이의 ESL 과제를 함께하며, 그녀도 영어 실력을 조금씩 늘려왔다.

“사실 혼자일 때가 더 의지가 생겨요. 아무도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남겨진 몫


또 다른 싱글맘 김영희(가명) 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이 지역에 정착했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병을 얻고 떠난 뒤, 막막했죠. 병원비도 밀려 있었고,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렸고…”

그녀는 고개를 떨구었다가, 곧바로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부터 내가 정말 엄마가 된 것 같았어요. 슬퍼만 할 수가 없었어요. 두 아이가 저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일어섰더니 주변에서 너무 많은 분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어요”

김영희 씨는  열심히 일하며 어렵게 두 자녀를 키웠다.

“아이들이 늘 제게 말해줘요.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고.”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고, 그녀는 조용히 덧붙였다.


텍사스에서의 생존, 그리고 삶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삶은 생존과 연결된다.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세 군데 일터를 오가면서도 아이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통역이 필요한 병원이나 학교 서류는 밤새 번역기를 돌려가며 알아낸다.

그런 일상을 누구에게도 자랑하거나 토로하지 않는다.

그저 ‘이게 내 몫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감정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들이다.

가끔은 서러움이 밀려오고, 때로는 외로움이 벽처럼 앞을 막아도, 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야 한다.

그 표정을 알아챈 아이가 조용히 건네는 “엄마 힘내”라는 말 한 마디에, 다음 날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함께할 수 있다는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여전히 따뜻한 연결이 존재한다.

교회, 학교, 지역 커뮤니티에서 싱글맘을 향해 손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아이들로 인해 알게 된 또래 학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주거나, 한식당에서 만난 사장님이 단골 손님처럼 챙겨주는 순간들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된다.

“같이 이혼한 건 아니지만, 같은 위치에 있다는 걸 서로 알아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돼요.”

그 말에서, 싱글맘이라는 정체성은 더 이상 고립이나 낙인이 아니라, 또 다른 연대의 언어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나눔’, 달라스 한인사회의 새로운 시작


이처럼 홀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실은 함께 버티고 있는 싱글맘들을 위해 최근 달라스 한인사회가 의미 있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DK파운데이션이 중심이 되어, 한인 동포들이 정성껏 모은 성금으로 ‘더나눔’ 싱글맘 돕기 캠페인이 전개된 것이다.

이 캠페인은 단순한 물질적 후원을 넘어, 실제적인 생계 지원, 자녀 교육 정보 연계, 법률·의료 상담 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감정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한다.


싱글맘의 삶에 대하여


이 칼럼은 달라스에 살고 있는 몇몇 한인들의 삶을 통해,

‘싱글맘’이라는 단어의 뒤편에 자리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접해 보고자 했다.

그 어디에도 완벽한 엄마는 없고,

그 누구도 이 길을 쉽게 걸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내는 용기로,

이들은 내일을 만들어간다.

혹시 지금 이 칼럼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 길 위에 있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삶은 결코 작지 않고,

당신의 걸음은 반드시 의미를 만든다.

그리고 이 도시에, 당신의 내일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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