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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고대진] 한강, 현기영, 그리고 노벨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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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KNET
문학 댓글 0건 조회 813회 작성일 24-11-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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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고대진
칼럼니스트 고대진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축하해야지! 어디서 만나 축배를 들까?” 작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날 아침 작가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작가는 해마다 삼 월 일 일이면 정오에 만나 점심을 하면서 ‘대한독립 만세’를 같이 부르는 작가이다. 한국에 머무는 시인이 참가하면 더 좋을 텐데… 하면서 근처 맥도날드에서 한강의 작품 이야기를 시작했다. 5.18과 4.3 에 관한 소설을 쓸 생각을 하다니. 연세대 캠퍼스에 있는 윤동주 시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를 보면서 작가의 자세를 돌아보지 않았을까….


노벨 한림원은 그녀의 5.18에 관한 소설 ‘소년이 온다’와 4.3에 관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고 전한 바 있다. 광주에서 5.18을 몸소 겪었던 ㅈ 작가는 시를 통해 그 슬픔을 토로했던 작가라서 감동이 더 한 것 같았다. 제주 출생인 나도 4.3에 대해 여러 번 발표했던 지라 감동이 비슷했다. 


내가 문학을 통해 4.3을 접한 것은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춘’을 통해서이다. 어려서부터 4.3에 관해 많은 말들을 들어왔지만 모두 쉬쉬하며 감추려 했기 때문에 얼마나 큰 비극인지 잘 몰랐다. 동네마다 ‘순이 삼춘’ 비슷하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들이 한둘 있었는데 4.3 난리 때 저렇게 되었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이 민간인 학살 사건 후 30년이 지난 1978년, 현기영 작가는 소설 <순이 삼촌>을 <창작과 비평>에 발표하면서 '제주 4·3 항쟁'을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꺼냈다. 국가권력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정면으로 다룬 이 소설은 소설집으로 출간되면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출간되자마자 작가는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소설은 '금서'로 지정되어 독자를 만날 수 없었다. 다행히 금서가 되기 전에 동생이 사서 간직한 책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뒤 발표되는 현기영 작가의 작품들을 빠짐없이 읽게 되었다. 나와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년 선배인 현기영 작가의 소설에는 내가 자라던 곳의 익숙한 풍경이나 마을이 있어서 더욱 가깝게 내게 다가왔다. 특히 2023년에 출간된 가장 격동적인 제주의 현대사를 다룬 장편소설<제주도 우다>를 읽은 후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제주 4.3의 진실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며 함께 분노했다. 


2021년 출간된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과 그 역사적 상흔을 세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한강 작가는 이 책의 출간기념회에서 말한다. “1990년대 후반쯤 제주 바닷가에서 3~4개월 월세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주인집 할머니가 골목 어느 담 앞에서 ‘이 담이 4·3 때 사람들이 총 맞아 죽었던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건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 할머니도 또 한 분의 <순이 삼춘>이었을 것이다. 참조한 글을 보면 현기영 작가의 자전적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비롯해 열 다섯 개도 넘는 4.3 기록물과 진상 보고서가 있는데 작가가 얼마나 고민하며 역사적인 사실에 접근하려 했는지 알게 된다.


한강 작가는 소설에서 친구 인선이의 목소리를 통해 말한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두 주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 천 오백 명이었고, 그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휴전 된 것뿐이었으니까...”


소설은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라고 시작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마음에도 녹지 않는 성근 눈이 쌓이고 있었고 몸도 차가워졌다. 우리가 어떻게 4.3과 작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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