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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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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TN
문학 댓글 0건 작성일 24-06-1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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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달라스에서 아테네로 가는 직항은 없다. 신화 속 인물들을 거치지 않고 신들에게 갈 수 없듯이,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시카고를 거쳐 9시간을 날아가야 아주 오래된 도시 아테네가 나온다. 공항은 딱 우리나라 김포공항 수준이었데, 도시의 분위기 역시 1980년대 서울과 흡사하다. 시의 정책인지 몰라도 높은 건물은 거의 없으며, 아테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크로 폴리스와 리카바토스 언덕을 중심으로 비슷한 높이의 무채색 주택들이 원을 그리며 도시를 이루고 있다. 유적지와 거주지도 별로 구분이 없으며, 산책을 나서면 어디서든지 허물어진 신전의 기둥 몇 개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소 는 중심가에서 한 십 오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일반 상업 건물을 개조해서 에어비 앤비로 내놓은 듯 구조가 참 특이했다. 건물 1층엔  옷가게가 있고,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가방 두개와 사람 두 명이 간신이 서서  탈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방하나와 거실, 작은 주방이 있는  공간이 나왔다. 이 건물엔 이런 구조의 숙소 가 한 몇 개는 되 보였는데, 완전히 독립된 구조였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쪽에 있는 투숙객들을 체크 아웃 할 때 딱 한 번 마주칠 수 있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아침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아침이란게 에스프레소 커피캡과 오렌지 주스 두 팩, 크로상 두 봉지였다. 하지만 어쨌든 주인으로 보이는 젊은아가씨는 영어가 몹시 유창했고, 친절했으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이유 없이 기뻐해주어, 남편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일반석에서 9시간을, 그것도 중간 자리에 끼어 꼼짝 달싹도 못한 채 비행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전11시에 아테네에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우리는 쉬다가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아테네 시내로 나갔다. 중심지인 산티구마 광장은 숙소에서 10분 거리였는데 이 광장 뒤로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는데, 주변은 서울의 명동처럼 많은 상점과 식당,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일단 식당으로 가서 수블라키와 그릭살라드를 먹었다.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갈아 만든 수블라키는 떡갈비 맛이 났는데 아주 부드러웠지만, 뒷맛은 살짝 느끼했다. 어중간한 저녁을 먹은 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모르는 도시에서는 무조건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보면, 반드시 뭔 가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뒤 국회의사당 앞을 지키고 있던 근위병들의 사열식이 있었다. 옅은 갈색의 유니폼도 특이했지만, 그들의 걸음걸이 역시 폴카를 추는 것처럼 참 이색적이었다. 마치 술 취한 군인들이 발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주 오래된 전통이란다. 그리스사람도 기다렸다가 보는 사열식이니, 인기있는 구경거리임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겸 거리를 걷다 보니 수풀이 우거진 아주 큰 정원이 나왔다. 하늘을 가릴듯한 키 큰 사이프레스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는 입구를 지나자, 곳곳에 잊힌 신화처럼 낙과한 오렌지가 수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오렌지나무 숲이 보인다. 아테네시민들이 쉽게 오가는 산책로인 듯 조깅을 하거나,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온 젊은 부부의 모습도 보이고,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여느 도시처럼 정겹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국립 정원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을 잃은 것 같았는데, 석양에 신전의 기둥들이 보인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제우스 신전 자리인데, 지금은 공사중이고, 이미 문을 닫았다고 한다. 예전에 아는 문인이 아테네에서 한 달을 살아보니  동네 곳곳이 유적지란 말이 정말 실감났다. 굳이 힘들여 지도를 보며 찾아가지 않더라도, 걷다 보면   유적들을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데 그 유적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천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모퉁이만 돌면 개선문이나 고대 올림픽 경기장을 만날 수 있고,  신화속 인물들을 만날 것만 같은 장소가 수두룩하다. 고대 아고라광장을 가면 테스형이 지금도 툭 튀어나와 ‘너 자신을 알라’하고 일갈할 것만 같고, 크산티페가 대장장이 남편이 일은 안하고 철학타령이나  하고 있다고 어디선가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거리이름부터 제우스, 헤라, 아프로디테등 수 많은 신화속 인물들과 함께 사는 나라, 이 천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서구문명의 근간이자 인류문명의 건축, 문학, 역사, 철학,신학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리스 문명의 출발지인 아테네가 새삼 낯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저 멀리 석양에 비친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새로운 것도 없다는 것을….  내일은 아크로폴리스 일대와 아크로폴리스 뮤지엄을 아침 일찍 갈 예정이다. 벌써 여행시즌이라 어디든 좀 늦게 가면 관광객들로 발 디딜틈이 없다.


박혜자

미주작가/칼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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